마가복음 9장 : 주님의 영광과 고난의 본
마가복음 9장 : 주님의 영광과 고난의 본 / 24년 11월 24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8:38, 개역한글)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저희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막9:1-13, 개역한글)
제가 계속 마가복음을 교제하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 8장 후반부 말씀을 복음말씀으로 교제드렸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막8:31, 개역한글)
이 말씀을 하셨지만 제자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전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했을때에 베드로가 맞는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그 고백 이후에 베드로의 반응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8:32-33, 개역한글)
베드로는 주님을 위한다고 말했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저희들도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의 핵심은 주님의 고난받으심입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은 거절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베드로도 고난을 받기를 싫어하는, 거절하는 성향이 주님께 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4-35, 개역한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자기의 목숨을 불사하는 것이 때로는 손해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다 기억하시고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로하실 필요를 느낀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9:1, 개역한글)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본 베드로는 후에 이와같이 기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벧후1:16, 개역한글)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본 자는 고난의 길을 담대히 통과할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8:38, 개역한글)
이 때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임하게 될 때에 주님과 함께 한 자들의 소망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막9:2, 개역한글)
"엿새 후"는 주님께서 고난 받으실 것과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고, 또 영광중에 오실것을 말씀하신 후로 엿새 후일 것입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막9:3, 개역한글)
주님의 광채는 이 세상에서 올수 없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주님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가지게 될 영광스러운 소망을 확신 가운데 갖게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십니다. 모세는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구원자입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들을 우상숭배로부터 구원해내고자 했던 구원자입니다.
특별히 마가는 옷에 대해서 강조하는 복음서를 쓴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주님의 얼굴이 빛난 것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영광스러운 소망에 대해서 나타내셨을뿐 아니라 주님의 영광에 대해서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저희가 오늘 오후에 계시록 14장 말씀을 교제할 것인데요. 단 한사람도 죽지않고 고난을 통과하는 14만 4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른 수많은 무리들 중에 순교의 길을 갔다 할지라도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길을 따른 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노의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막9:5, 개역한글)
이것은 제자들이 가져야 될 영광스러운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천년왕국이 임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왕국과 연관돤 초막절의 초막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베드로는 심히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포근하신 분이고, 어떠한 잘못도 다 받아주시는 분이고, 저희가 돌이키기를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작정된 때가 되면 그 심판을 행하시는 두려운 분이십니다. 이러한 것을 저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기가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막9:7, 개역한글)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앞의 말씀의 내용은 같지만 후반부가 다릅니다.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이는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대우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또 승천하시고 이후 주님께서 공중에 오실때에 교회가 하늘로 올리울지를 저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는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을 그리 마옵소서라고 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생각이 아닌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저희 생각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때때로 저희의 육신이 드러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5, 개역한글)
높임을 받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합니다. 낮은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그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또 저희들에게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9장 8절에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도자와 선지자라 할지라도 오직 주님만 드러나야 하는 것닙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막9:10, 개역한글)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은 이미 6일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합니다.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막9:11, 개역한글)
그들은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엘리야가 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관심있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고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막9:12, 개역한글)
주님께서 이 고난의 길을 말씀하셨지만, 그리고 제자들도 고난의 길을 가야 할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저희들에게 먼저 본이 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먼저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해하면 안되는 부분은, 주님께서 육체적으로 받으신 고난이 절대적으로 가장 높다고 하면 오해할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으로 낮아지셨고, 또 더 낮아지셨습니다. 주님이 어떠하신 분이심을 볼 때에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람도 주님과 같이 낮아질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것을 볼 때에 저희들이 마땅히 그와 같은 길을 가야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임하실 하나님이심을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것을 다시한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막9:31-32, 개역한글)
여전히 제자들은 이 말씀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얼마나 무지한 자들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본을 보고서도 저희들은 여전히 이것을 거절합니다. 저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로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주님의 본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