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죄 > 기드온 쿠 형제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모두를 이 자리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돼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 1년 만에 방문하는 것인데요. 또 여기 성도님들이 모두 또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또한 감사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 앞에서 성경 인도하신 형제님께서 아주 적절한 찬송가를 선택해 주셨는데요.
그런데 한 가지 실수를 하셨습니다. 사회 보시는 형제님께서 이 타이머 버튼을 안 누르고 가셨습니다. 저는 이 타이머를 시작시키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간을 맞추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미리 알려드린 대로 그 주제입니다. 이것이 먼저 알려졌고 이 말씀을 한번 읽고 오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간 관계상 전체 장은 읽지는 않고 몇 부분을 선택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 장의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통역하는 형제님이 요즘 목소리가 안 좋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형제님을 돕고자 합니다. 레위기 16장 29절부터 마지막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그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아비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성의를 입고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레 16:29-34).
로마서 5장을 읽겠습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0-11).
그리고 히브리서를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입니다. 11절부터 14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1-14).
그리고 10장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9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 10:1-9).
13장을 마지막으로 읽겠습니다. 13장 10절부터 15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0-15).
주님께서 우리가 공적으로 읽은 이 말씀에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주제는 이 "속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하게 이 속죄가 우리에게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면 내일 이 시간에 우리는 다른 또 중요한 주제인 "칭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3장부터 5장까지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상세한 것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모든 성경 모든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이 개념에 대해서, 특별히 구원의 개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참으로 위대하고 큰 것이라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 밤 우리가 살펴볼 주제인 '속죄'입니다. 또 다른 한 측면은 의로움과 관련돼서 내일 밤 살펴볼 '칭의'라는 주제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잘 알려진 주제인 '구속'에 대해서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 구속이라는 단어 자체도 주로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께서 한번 찾아보시도록 맡겨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한 표현은 '성화'라는 거룩하게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러 가지 단어들이 이 구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일에 그 놀라운 부요함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그 부요하심에 대해서 여러 다른 점을 서로 강조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복음 전도자는 이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로마서에 나와 있는 그러한 개념들을 잘 붙잡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 로마서를 잘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주 효과적인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분이 이루신 그 구원을 우리가 잘 전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그러한 개념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속죄에 대한 몇 가지 측면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레위기 16장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1장에 대해서 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1장 1절에서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19장 초반부를 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 산으로 불러내십니다. 그 산은 분명히 시내산입니다. 그것은 성막이 아직 지어지기 전에 시점입니다. 그래서 이 성막이 지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산 위에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번개와 천둥과 그리고 지진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산에서 나가라." 그리고 이제 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장막을 지어라." 출애굽기 24장에서 "그리고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가까이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과 가까이 교제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점점 멀어지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이와 같은 교제를 우리와 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제를 기뻐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을 짓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장소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집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장소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과 가깝게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마지막 가게 될 때에 우리는 그 장막이 완성된 것을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장막을 가득 채운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레위기 1장은 이러한 출애굽기의 연장선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출애굽기를 지나서 하나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이제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성막 안에 거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 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산에서부터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 가운데서 회막에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에게 가까이 오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모세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말씀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레위기가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지난 목포 집회에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레위기는 이와 같이 간단하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레위기 초반부에 여러 희생제사가 언급된 것을 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사람들이 나오기 위해서 그 희생 제사를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첫 부분에서 무엇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지를 상기시키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레위기 중반 부분에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 부정하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럽힘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가운데 부분은 누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레위기의 초반은 무엇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올 수 있는가, 중간 부분은 누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가, 그리고 목포 집회에서 레위기 23장에 나와 있는 "여호와의 절기"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이제 '언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그 날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확인해 봐야 되는 내용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나올 때 이것을 살펴봐야 됩니다. 이것은 그냥 우리 집을 흔히 쉽게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냥 오고 싶을 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고 싶지 않으면 오고 싶지 않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그렇게 가볍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 날들이 "이것은 나에게 속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날에는 나에게 와야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 올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여기 레위기의 중간 부분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기에 누가 나올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레위기 16장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레 16:2).
이제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부정함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 싶어 하는 그 마음만큼,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적인 모습은 부정한 그런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16장 2절에서는 또한 아론에게 언제나 무시로 들어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가까이 나올 때 그는 특별히 어떤 일들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 16장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적으로 부정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줍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가정, 그의 권속들조차도 부정해서 함부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6장에 나와 있는 것은 이러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기에 적합한 자들이 되는지 그 방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레위기에 그 각 부문이 이런 주제를 말하고 있다고 알고, 이제 왜 레위기 16장이 그중에 여기에 자리 잡혀 있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은 '무엇'을 말합니다. 가운데서는 '누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책의 마지막은 '언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께서 그 '누구'로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레위기 23장을 보게 될 때에 이 속죄일은 7월 10일에 있습니다. 레위기 23장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달력, 일정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전체 책에서 이 레위기 16장은 아주 독특한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이 자세하게 속죄일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레위기 16장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그러한 장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경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그러한 장입니다. 만약에 여러분께서 이 장을 아직 자세하게 한 구절, 한 구절 살펴보지 않았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꼭 해보셔야 되는 일입니다. 제가 아직 이 타이머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남은 시간 동안 이 레위기 16장을 다 다룰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되는 그러한 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오늘 이 시간 저는 이 16장을 그냥 표면적으로만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 16장의 자세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히브리 서신서를 자세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히브리서에 전체 배경이 되는 주제가 바로 이 속죄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16장에 모든 상세한 것을 잘 알게 된다면, 우리는 히브리서의 여러 상세한 부분들을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히브리서를 말씀을 드릴 때에 이것을 함께 참고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그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저는 이것을 그 이스라엘의 1년 중에 '가장 엄중한 그런 날'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면, 7월 1일은 나팔절입니다. '러시하사나'라고 히브리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날팔 소리가 울려 울려퍼집니다. 이제 그 나팔 소리가 들려지게 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10일 후에 하나님을 만나러 가야 된다라고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전통적으로 그 남아 있는 9일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주 착한 소년, 소녀가 됩니다. 그들은 이제 자기를 살피고, 혹시 잘못한 것이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이 정하신 기일에 나아가는 것이 이것보다 더 엄중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론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해서 그날 이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전승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남아 있는 9일 동안 대제사장은 이제 그 의식을 연습하게 됩니다. 이제 여러 상세한 부분들을 이제 차근차근 해보는 것입니다. 어떤 실수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만약에 그런 실수를 하게 된다면, 이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러한 절차에 대해서 잘 알게 돼야 될 것입니다. 아주 흠없이, 이 모든 절차가 잘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연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절차들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왜 그렇게 조심하게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때는 아론은 그 아름답고 그 영화로운 제사장 옷을 입지 않습니다. 그 출애굽기 28장에 나와 있는 제사장 옷은 그가 이스라엘 앞에서 대제사장 역할을 할 때 입는 그 놀라운 옷입니다. 그런데 속죄일에 그 제사장 옷을 벗어놓게 됩니다. 16장 4절에서는 그거 대신에 그는 세마포, 그 단순한 옷을 입게 됩니다. 그는 세마포 고의를 또한 잊게 됩니다. 그리고 세마포 바지를 입습니다. 그리고 세마포 띠를 띱니다. 그리고 세마포 관을 씁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그 화려한 옷과는 전혀 다른 옷입니다.
때때로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이 여기서 실수를 합니다. 아론이 여기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리고 그 숙제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이제 나오게 될 때에, 그리고 그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밖에서 조심하며 살펴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한 해에 이 속죄일 제사를 받으셨는지를 그들은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에 어떠한 기척도 없이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다면 아론이 그 안에서 죽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제 여기에 벨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이제 아론이 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아론이 살았구나, 하나님께서 이 해에 그 제사를 받으셨구나, 이러한 설명은 사실 아주 이제 흥미로운 설명인데요. 하지만 이것은 속죄일의 올바른 것을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소리 내는 방울은 제사장의 그 화려한 그 옷에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속죄일에는 아론은 그 옷을 입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한 세마포옷을 입습니다.
사람들은 왜 아론이 그날 옷을 이렇게 바꿔 입었는지를 궁금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세마포 옷이 그리스도의 그 낮아지심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낮은 사람으로 오신 것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이 아론이 그와 같은 영광을 나타내는 옷을 이제 벗어 놓습니다. 그런데 제 의견은 여기서 약간 다릅니다. 저는 아론이 그 그리스도를 하얀 옷을 입음으로써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때 아론이 하얀 옷을 입고 그 앞에 나아가는 것은 죄인을 대표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죄에 대한 속죄의 제물을 들고 나아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인으로서, 또한 이스라엘을 그 이스라엘의 죄인인 그들을 대표합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주 죄악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짐승들을 가지고 앞에 나옵니다. 첫 번째로 그는 수송아지와 수양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 송아지는 속죄제로 들여지는 예물입니다. 또한 수양이 번제로 드려집니다. 그리고 또한 두 수염소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것도 역시 속죄제에 들여지는 제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제물입니다. 그리고 또한 수양을 가지고 나올 때 모든 민족을 위한 그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위한 번제가 됩니다. 하나님께 두 마리의 수양을 앞에 놓게 됩니다. 여기에 두 염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염소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단수'로 속죄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는 두 염소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하지만 2개의 '속죄제들'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하나의 속죄 제사에 제물로 두 염소가 제시됩니까? 왜냐하면 두 염소가 모두 하나님을 위한 하나의 속죄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 염소는 다른 측면을 강조해서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염소는 죽임을 당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피는 이제 지성소까지 가지고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염소는 이제 계속 살아있게 됩니다. 그들은 '아사셀 염소'라 칭해집니다. 그리고 그 염소를 광야로, 무인지경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제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아론은 자기와 자기의 권속들을 위해서 먼저 속죄 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그 수송아지를 죽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취합니다. 그런데 이 수소 피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기 전에, 그 지성소에 먼저 향을 피우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앞에 존전 앞에 향기를 올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지성성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그리고 바로 그 연기가 그 속죄단으로부터 그 시은좌로부터 그를 연기가 가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향기는 그의 그 육신의 냄새를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지 않도록 가려줍니다. 그 밖에 있는 번제단에 그 불은 항상 타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제 희생 제물들이 놓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뜨거운 숯들을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들을 이제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에 항단에 놓여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이날은 특별히 금 향로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단에서 불이 핀 숯을 취해서 그 금 향로에 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이제 향로를 그 불타는 숯 위에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그것으로 인해서 향기가 나는 구름을 만들어 향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장막 앞에 서게 됩니다. 이제 그 금향단에 나오는 연기로 인해서 그 모든 것을 가득 안을 채울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팔을 장막 안으로 뻗어서 그 향단을 향로를 안에 넣게 됩니다. 그리고 그 향로에서 나오는 연기가 그 안의 공간을 가득 채우게 만듭니다. 그의 전체 몸은 아직 그 장막을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향로를 바닥에 놓게 됩니다. 계속해서 그로부터 연기가 그 안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그는 그 송아지의 피를 담은 그릇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이제야 그는 이제 떨리는 그 걸음걸이 가운데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 피를 들고 그 지성소 앞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의 손가락을 그 그릇에 넣고 그리고 그 피를 찍어서 취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냥 이렇게 막 피를 막 해서 뿌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냥 국그릇에 소금치듯 하듯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송아지의 피를 담은 그릇에 손가락을 살짝 찍어서 그리고 이제 그 시은좌 위에 한 번 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시은좌 앞의 땅에 그 피를 7번 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나오게 됩니다.
(아!) 만약에 제가 그렇게 나와버렸다면, 제가 아론이라면 아마 거기서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을 잊고 안 했기 때문에 죽었을 것입니다. 그전에 먼저, 이제 염소 제비 뽑는 일을 먼저 했어야 되는데 제가 그럼 그것을 잊었죠. 이제 제비를 뽑아서 어떤 것을 여호와를 위한 것인지를 뽑습니다. 그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염소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피를 취합니다. 그래서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속죄제를 위한 제물입니다. 그것이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찌니"(레 16:15).
"그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는 이제 아까랑 똑같이 행합니다. 손가락을 들어서 피를 찍어서 그 시은좌에 뿌립니다. 그리고 이제 시은좌 아래에 7번 피를 뿌리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그 속재제를 위한 첫 번째 드린 그 송아지의 속죄제 피는 어디 있습니까? 어 그것은 이미 밖으로 취해 나간 것이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여러분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 그릇이 여전히 지성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 염소의 피의 그릇을 가지고 들어왔죠. 이제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피를 그렇게 뿌렸죠. 이제 하나님의 임재 앞에 그 두 개의 그릇이 놓여져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그 송아지의 피가 담긴 그릇, 그것은 자기와 자기의 가정을 위한 속죄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때로 새로운 그릇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위한 속죄제 피의 그릇입니다.
이제 무엇을 합니까? 이제 18절을 하게 됩니다.
"그는 여호와 앞 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찌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레 16:18).
그래서 우리가 이 구절을 보고 그래서 그 수송아지의 피가 담긴 그릇이 먼저 밖으로 내가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같이 취해서 이제 그것을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는 것입니다. 수송아지의 피를 그 뿔에 바를 뿐만 아니라 염소의 피를 바릅니다. 그리고 나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레 16:20).
이제 그 산 염소가 놓여져 있는 곳에 아론은 나오게 됩니다. 이제 아론은 그의 두 손을 가지고 그 염소의 머리에 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 염소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레 16:22).
여러분 이제 다 마쳤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여러분이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그 금 향로는 우리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게 어디에 놓여 있죠? 지성소 안에 놓고 왔지 않습니까? 그래 다시 이렇게 들어가야 됩니까? 살짝 들어가서 그것을 빠르게 들고 나올 것 같은데요.
때때로 이제 작은 아이들이 저한테 이렇게 속임수를 걸 때가 있습니다. 저의 조카가 저에게 종종 하는 것인데요. "삼촌, 제가 한 가지 퀴즈를 낼게요. 이제 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왔어요. 그리고 3명이 그 버스에 탔어요. 다음 정류장에서 10명이 또 그 버스에 탔어요. 그리고 그다음 정류장에서 20명이 또 타고 또 3명이 내렸어요. 그리고 그다음 정류장에서 15명이 타고 10명이 내렸어요." 그리고 나서 묻는 게 이 버스가 몇 번 정류장에서 멈췄습니까라고 뭍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 수만 세고 있었는데 말이예요.
제가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아론이 몇 번 왔다 갔다, 들어갔다 나왔다 했죠?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들어가고 나오고 말씀을 드렸죠. 여기에 여러 가지 상세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왜 한 손가락만 사용하죠? 그리고 속죄단과 그 시은좌 밑에 왜 그가 이렇게 뿌렸죠? 이 레위기에서 '뿌리다'라는 것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뿌리다'라는 것이 레위기 1장의 첫 번째로 영어 성경에 나옵니다. 거기서 이제 번제로 드리는 짐승이 죽임을 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죽은 짐승으로부터 피를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지만 거기서 이제 '뿌린다'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 여기 16장에 나와 있는 뿌리는 것과 1장은 다른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뿌리는 것은 이렇게 뿌리는 건가요? 그것도 이렇게 뿌리는 것은 아닙니다. 1장에 나오는 그 뿌리는 것은 양동이로 그냥 피를 이렇게 뿌리는 것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손바닥으로 이렇게 들어서 피를 뿌리거나 아니면 그릇째로 이렇게 뿌리는 것입니다. 그 단에다가 아주 많은 피를 이렇게 뿌려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레위기 16장에서는 이제 조금씩 뿌리게 됩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에서는 이 희생 제사의 효력이 아주 많다는 것을, 풍성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기 16장에서 속죄일에 뿌리는, 이 손가락으로 뿌리는 것은 아주 정확하게 그 구속의 속죄 사역의 정확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모두 참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일서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게 한다는 말씀을 봅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그 피의 효력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그 폭이 넓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특정 죄가 빠져 있는 게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제될 수 없는 그런 죄가 있습니까? 이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레위기 1장에서 뿌리는 것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이 그리스도의 피는 그 각각의 구체적인 모든 모든 죄들을 다 속죄합니다. 손가락으로 찍어 그 뿌리는 피, 그 정확성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그 각각의 모든 죄에 대해서 구속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 레위기 16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제 제사장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이제 산 염소에 손을 얹고 안수하였습니다. 그 염소는 '아사셀 염소'라고 불리웁니다. 다른 희생 제사들도 모두 그것을 드리는 자가 자신의 손을 그 짐승의 머리에 얹게 됩니다. 그것이 번제든지, 속죄제든지, 화목제든지, 그런데 그때는 단 한 손만 그 짐승에 올려놓게 됩니다. 하지만 아사셀 염소의 이 짐승의 머리에는 두 손을 아론이 얹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무게를 싣고 그들의 머리에 손에 얹게 됩니다. 그 민족의 모든 불법과 죄들이 바로 이 아세셀 염소 머리 위에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한국어 성경에서 산 염소를 '아사셀'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왜 갑자기 염소를 아사셀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해하셨을 것입니다. 만약에 아론이 자기의 애완동물이 있으면 아마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사실 여러분의 한국어 성경이 영어 성경보다 더 정확하게 번역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원어에서 '아사셀' 염소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도 모르죠. 저도 모릅니다. 아마도 모세만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이렇게 두꺼운 책이 왜 이 염소가 아사세리라고 불리는지 설명한 책을 알고 있는데요. 이 염소가 왜 아사셀이라고 불리는지 설명한 책이 그 주제만 다루고 있는 책이 이 정도 두께라는 것을 보신다면, 아무도 이 세상에서 아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이것은 어떤 마귀의 어떤 면을 말하는 것이랑 연관짓습니다. 그것은 아주 웃음꽝스러운 것이죠. 그런데 어쨌든 이 염소는 아사셀로 불립니다. 오직 하늘에서만 그 아사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영어 성경에서는 이제 '피하게 된 염소'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도 역시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를 말해줍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피하게 된 염소라고 불립니다. 이 흠정역 영어 성경은 아주 놀라운 성경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영어 성경 '킹 제임스 버전'이 어떻게 번역됐는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흠정적 성경은 영어 그 언어에 있어서 많은 기여를 한 성경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영어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단어들이 이 성경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이스케이프 염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이스케이프 염소는 사실 이제 잘 된 것은 아닌데요. 어떤 사람이 이제 잘못을 행했을 때, 그러면 이 사람은 이제 희생양을 찾는 것입니다. "네가 그랬다고 해." 그래서 이때 이스케이프 염소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를 아주 이렇게 가리키는데요.(웃음) 그래서 이 '희생양'이 오늘날 영어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표현인데요. 이게 바로 이 레위기 16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 아론이 그 염소 위에 두 손을 얹고 안수하였을 때, 그리고 나서 이제 그를 광야에 내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의 전승이 이 염소에 있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광야로 아주 멀리 그 아사셀 염소를 데리고 나아가게 돼는데요. 그 염소가 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진으로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낭떠러지 끝에까지 그 염소를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합니다. 발로 차서 떨어뜨리는 것이죠. 그래서 그 염소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죽게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게 그 염소가 다시 진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성경의 기록상 여기에 이 염소는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염소는 산 염소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한 염소는 죽고 그리고 그의 피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제 산 염소를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이제 그들은 실제적으로 죽지만, 그는 산 염소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속죄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 피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다른 한 염소는 밖으로 멀리 데리고 갑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여러 측면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가치는 하나님 앞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 모든 사역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연랍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온전한 희생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실 때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드리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의 모든 것이, 그리고 그분의 죽음에 마침내 모든것이, "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의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피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의 가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죽기 전에 이와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우리가 죽기 전에 내 영혼을 아버지께 드린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밖으로 데리고 나간 산 염소는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가지고 가게 하는 그런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인지경,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이 산 염소는 이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호와를 위한 이제 죽은 염소가 있고, 그리고 아사셀 염소가 있었습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 이루신 속죄 제사는 무엇입니까? 그분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가치 있는 희생제사였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것이고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이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와 관련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 온전한 속죄의 제사로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을대, 그때가 있었고, 또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구속 사역에 두 가지 측면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속죄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속죄제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속죄의 일이 완성되면 무엇이 이루어집니까? 여기서 이제 많은 성경 학자들이 이 속죄, 특별히 이제 영어로는 이제 어텀먼트라고 되어 있는 것을, 이 속제일날 이루어진 이 속죄 제사로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이 속죄일이 이루어진 것은 그 죄를 속하는 일을 이룬 것입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 16:30).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레 16:34).
그래서 이 속죄를 이룬 것은 그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속죄일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다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한 번 새로운 한 해를 화목하게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한 해를 또 그들과 함께 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영어의 어톤먼트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어톤먼트라는 개념이 신약 성경에서는 화목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로마서 5장을 읽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화목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레위기 16장에 나와 있는 그 속죄의 개념을, 신약 성경 로마서 5장에서 같은 개념을 말해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제 시간이 점점 촉박하게 다가가고 있는데요. 또한 옆에 통역하는 형제님도 쉬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9장 10장을 보게 될 때에 여기에 우리는 송아지의 피를, 또 염소의 피를 보게 됩니다. 여기에 왜 염소와 황소의 피가 있습니까? 왜 여기에 양의 피는 없습니까? 왜 수양의 피는 없습니까?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3-14).
여기 염소와 황소의 피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그 속죄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아론이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릴 때에 그 황소의 피를 들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여기 나와 있는 그 염소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염소와 황소의 피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한 암송아지의 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민수기에서 이 암송아지의 재로 깨끗게 하는 물을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제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암송아지의 재로 만들어진 그 정결케 하는 물을 이제 더럽혀진 사람에게 뿌리는 겁니다. 우리는 이 속죄일의 어디서 보았습니까? 우리는 그 속죄일에서 언제 그 암송아지 재가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까? 때때로 여러 형제님들이 이렇게 물어보는데요. "기드온 형제님, 지난주에 이렇게 설교하셨는데," "그게 내가 뭘 했지?"라고 묻게 됩니다. 저는 그 속죄일 날, 아론이 그날에 필요한 그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이제 그의 몸이 완전히 정결케 되도록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때 이제 아론 그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 정결케 하는 물을 바로 그때 사용해서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와 있는 이 세 가지가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가 모두 이 속죄일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두 깨끗게 하는 것이고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구약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피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거기서 흘려진 피가 그 예전의 모든 구약에 이런 것들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그날 속죄일 날, 정말 그 모든 죄가 다 깨끗이 된 것인가요?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 속죄일날 한 의식이 정말로 그들에게 실제로 죄가 사라지는 것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잠시 일시적인 그냥 덮어놓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제 먼지들을 그 카펫 밑에 다 숨겨놓는 것처럼 그렇게 하신 거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 때까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끄집어내서 다 깨끗이 한 것이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신약이 말하고 있는 속죄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날 하나님께서 정말로 정결케 하는, 죄를 속하는 일을 하셨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16장 마지막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를 속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날 이렇게 한 것은 실제로 그 죄를 속하는 실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와 같은 속죄제의 효력이 아주 일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바로 다음 날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다시 그다음 해에 똑같이 했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날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사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나가서 죄를 짓습니다. 다시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맙니다. 그들은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럽힘을 입었습니다. 바로 그들 때문에 이 회중 전체가 더럽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한 해를 또 기다리고, 이 일을 반복합니다. 거기서 바로 이 그리스도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단번에 또한 영원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진정한 화목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영원한 속죄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다시 제사를 반복해서 드릴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속죄하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위기 16장이 사실 지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여기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빼먹었는데요. 제가 그렇게 실질적으로 행동을 했으면 저는 그 죽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염소가 이제 죽임을 당하고 피를 취합니다. 그 아론을 위한 속죄제인 수송아지의 피가 또한 취해집니다. 여기에 이제 많은 죽은 시체들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합니까? 여전히 거기 남아 있죠. 이 시체들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이제 정결한 한 사람이 그 죽은 짐승을 들고 이제 진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죽은 짐승들을 이제 재가 되도록 태웁니다.
이제 5분 동안 아주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잠이 확 깨죠. 여러분이 레위기 4장, 또 그 부분을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또한 7장에도 나와 있을 텐데요. 만약 이제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간 속죄재의 그 짐승은, 그것은 또한 레위기 6장에 나와 있는데요. 이제 속죄소 안으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 그 짐승의 피를, 그 짐승은 그렇다면 그 짐승의 고기는 제사장이 먹도록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속죄제는 지성소 안으로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짐승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속죄제를 드린 짐승의 고기는 아론과 그의 권속들이 먹게 됩니다. 그런데 속죄일에는 그 피가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속죄재에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에 그 짐승들의 시체를 가지고 진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재가 되도록 다 태워버립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히 13:10-11).
그는 유대인들의 의식을 말하였습니다. 그 모세의 율법 안에서, 바로 그 속죄일날, 바로 그 피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희생 제물을 먹을 수 있는 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구약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대신에 이제 그리스도와 관련돼서는 그분께서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피는 그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와 같은 희생 제사는, 우리가 만약에 유대 구약에 속한 사람들이라면은 이 제물을 먹을 권한이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제 다르다. 우리는 그 모세 시대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히브리서 8장에서 우리가 새 언약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놀라운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 지성소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몸은 진 밖으로, 영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진 밖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 진 안에 있었다라면 우리는 그 유대교에 속한 사람들이고 그것을 먹을 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와 같지 않고 우리는 먹을 수 있는 권이 있다. 우리는 그분을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우리는 영문 안에서가 아니고, 그것은 모세의 그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3).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부분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과 함께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그 영문 안에 있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여전히 그 모세의 율법 아래 있다면 우리는 그분을 누릴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문 밖으로 나간다면, 그분과 동일시하고 그분의 능력을 진다면, 그 새 언약 안에 속해 있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기드온 형제님에게 이렇게 가장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한 단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단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갈보리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게 우리에게 있는 제단입니다. 그런데 이 속죄일에 곧 구약에서 제단은 무슨 역할을 하였습니까? 우리가 그 두 시체를 가지고 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두 염소는 재가 되도록 태우게 됩니다. 그 두 짐승의 지체를 사람이 어떻게 태우게 됩니까? 대전 모임의 형제님들이 바베큐를 아주 잘 만드시죠. 여기 계시는 김형제님이 바비큐를 잘 만드시는 분입니다. 이 바비큐를 만드시는 분은 그 불에 공기를 어떻게 잘 공급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형제님이 그 불을 잘 조정하셨습ㄴ디ㅏ. 그래서 거기서 이제 좋은, 알맞은 열을 내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형제님에게 이 송아지 바비큐를 만들어달라고 할 때, 먼저 그 고기를 여러 가지로 자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 큰 고기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잘라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이 송아지와 이 염소는 아주 큰 짐승입니다. 저는 이 짐승을 잘라서 태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큰 짐승이 재가 될 정도로 태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기술인 것입니다.
제가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을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그 짐승을 가지고 사람이 와가지고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거기다 이제 잘 타라고 그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태우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이제 인화 물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짐승을 잘 태울 수 있습니까? 여기다가 이제 횃불을 던져가지고 태우는 것입니까? 그가 그 짐승을 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그것을 태우기 위한 목적으로 단을 쌓고 짐승을 태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출애굽기 20장을 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돌로 단을 쌓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성막에 있는 단은 구리로 만든 단이었습니다. 그 외에 구약의 여러 많은 단들은 돌로 만들어진 제단입니다. 그래서 저는 확신하는 것이 이 사람은 광야에 가서 단을 새로 만들고 거기에 이 송아지와 염소를 놓고 태운 것입니다. 물론 레위기 16장은 이 단을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거기에 이 단이 있었을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장에서 그 기자는 이제 레위기 16장에서 미처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너희에게 말해주겠다 하고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항상 거기 있었던 단입니다. 우리에게 이 제단이 있다. 이 제단은 영문 밖에 있는 제단이다.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다. 그 모세의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은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다. 레위기 16장에 이것이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기에 단이 있고 거기서 짐승이 태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것이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는 제단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이 제단은 우리에게 전면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곳으로 그분과 함께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우리에게 제단이 있다. "무슨 단이요? 단은 성막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레위기 16장에서 말하고 있는 단은 그 단이 아닙니다. 하지만 레위기 16장에서는 그 단이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성막 안에 있는 제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막 안에 있는 제단은 구약에 속한 그러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여러분을 그 갈보리로, 그 영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이 제단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바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과 관련돼서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릴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제단과 연관되어 있는 유대인들은 먹을 권이 없습니다. 먹을 권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 이 제단은 우리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영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잘 이해하셨길 바랍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속죄일의 여러 가지 규례들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내일은 더욱 쉽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이라면 이러한 주제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됩니다. 참으로 성경에서 이러한 주제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깊이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이레
2024. 10. 17. 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