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4. 10. 6. 15:37

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13장 8-10절(요약)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13:8-10,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8절 이후부터는 생명책이 나오고 짐승에게 경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생명책이 무엇인지,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귀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8-10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8절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는 창세 이후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은 모든 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단의 권세아래 놓여져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무서운 짐승의 날에도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짐승을 경배하거나 경의를 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으며 인내하고 믿음을 나타낼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들을 귀가 없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떠한 유익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8절)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9절)
9절 말씀에 교회는 빠져 있습니다.(2-3장과 비교해서) "누구든지" 교회는 휴거되어 이때에 땅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 가운데서도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시고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는 "창세 전에"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은 "창세 이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교회를 제외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8절에 생명책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도 생명책(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이 나옵니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미 휴거된 이후에도, 환난 시기에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절하고 사단을 쫒는 환난 시대의 자들에게도 계속해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그 복음의 전파는 택하신 14만 4천을 통해서 하실 것입니다. "귀가 있거든" 지상에 내려질 마지막 대접 심판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이킬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8절에 또한 짐승에게 경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경배할지, 짐승에게 경배할지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양께 경배하는 자들은 순교를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수 없을 것입니다.

- 김대현 형제님 : 8절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 주님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Q1. 그런데 왜 "창세 이후"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Q2. 그리고 어린양의 생명책, 그냥 생명책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르게 구분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차이가 없는건지, 차이가 있는건지 형제님들 중에서 교제해 주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8절에서 사단의 공격 대상이 구원받은 성도가 아님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 땅에서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더라" 사단이 짐승을 세움으로 그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믿지 않는 모든 자들로 자기를 숭배하고 섬기게 하게 위해서 역사합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됩니다. 계시록 2-3장에서는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라고 말씀합니다.(9절)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10절) 이 말씀은 사람이 심은대로 거두리라는 말씀과 연계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가 행한대로 하나님께서 분명히 징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순교의 길을 간다하더라도 믿음을 굽히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상이 있을 것이고 만일 굽힌다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믿음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가 영어성경에는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로 나옵니다. "죽임을 당한"이 먼저 나옵니다.
13장 3절에 거짓 부활이 등장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이것을 통해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을 우상화 하는데 사용합니다. 거짓을 만드는 이들의 능력은 또한 거짓 어린양을 만듭니다. 그래서 왜 어린양의 생명책일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저희는 지금 짐승을 마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자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 때에는 거짓된 어린양이 득세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어린양이 매우 중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어린양이 다시 강조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A1. 아까 질문하신대로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영어성경으로는 번역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죽임을 당한 것은 창세 이후가 맞습니다. 주님은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입니다.(벧전 1장 20절) 주님의 사역은 창세 전에 알리신바 된 것이지만, 주님의 죽으심은 창세 이후에 된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형제님들의 교제에 조금 첨언을 하겠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25:31-34, 개역한글)

"창세로부터" 이 복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이 주님께서 지상 재림을 하셔서 심판하신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을 주시는 것으로 이해 됩니다. 그런데 여기 모든 민족이 여기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양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통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는 교회는 하늘로부터 받은 신령한 복, 이스라엘이 받은 복과는 다른 복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차원의 새로운 신령한 복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2. 저도 더 얹어 보면, 계시록 21장 26-27절에 생명책과 언린양이 언급됩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21:26-27, 개역한글)

극명한 대립 관계를 나누는 것이 생명책입니다. 21장은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20:12, 개역한글)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20:15, 개역한글)

여기서는 그냥 "생명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13장에서 왜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할때, 극명한 대립관계에 있는 상황을 더 분명히 구분하기 위해서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붙은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4:3, 개역한글)

분명한 믿음을 보이는 성도가 그 믿음을 다른 성도에게 보이는 모습을 말합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확신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성도가 나에 대해서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가, 혹은 내가 다른 성도에 대해서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합니다. 믿은 자만이 우상숭배하지 않음을 생각해 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Q. 민원 형제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8절에 어린양을 the Lamb이라고 하고 11절은 a lamb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민원 형제님 : A. 자세히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8절은 고유 대명사로 주님으로 생각되고, 11절은 일반적인 양으로 보는것이 맞을것 같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계속해서 생명책에 대해서 보고 있는데요.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출32:32-33, 개역한글)

여기서 생명책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이 책이 생명책을 가리키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사4:3, 개역한글)

다시한번 그냥 생명책과 어린양의 생명책이 왜 다른지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1절을 교제하겠습니다. 두번째 짐승이 나옵니다. 이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11장 36절에 나오는 왕과 동일한 인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왕이 유대인일 것이라고 교제했습니다.

이 왕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쉴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 열조의 신들과 여자의 사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아무 신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할 것이나 (단11:36-37, 개역한글)

땅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번째 짐승은 이방인 출신이고, 땅에서 올라오는 두번째 짐승은 유대인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대문자 소문자를 구분하지 못했는데요. 성경에서 양은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두번째 짐승은 생김새는 양처럼 생겼지만 용처럼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주인인 사단을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처럼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첫째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둘째 짐승을 거짓 선지자로 분별합니다. 그런데 둘째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분별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희는 전에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적그리스도가 유대인 중에 나온다고 교제했습니다. 먼저되신 형제님들 중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의견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유대인이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에게 메시아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형제님들의 분별이 궁금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많은 책들에서 첫째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봅니다. 오히려 짐 알렌 형제님의 분별이 소수의 의견입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주요한 견해를 따라가는 것이 옳아보입니다.    

10절에서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저희가 운동할때 가장 힘든것이 그 힘든 운동이 언제 끝날지 모를때에 가장 힘듭니다. 그래서 이 성도들에게 언제 이 고난이 끝날지를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19:14-15, 개역한글)

그들의 모습이 어떻지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 한검으로 심판하십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19:19-20, 개역한글)

짐승을 먼저 말하고 거짓 선지자를 말합니다. 그 순서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산채로 유황불에 던져짐을 당합니다. 그리고 이 결과에 대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두번째 짐승이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이 계시록 19장 20절에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Q. 저는 적그리스도의 실체와, 거짓 선지자의 실체가 무엇일까 대단히 궁금합니다. 여러 주석들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 정확히 짚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 실체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