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하나님을 거역한 불효자들
< 복음 : 하나님을 거역한 불효자들 > 강성찬 형제님
안녕하세요. 이사야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1장 2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2-4).
여기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주 엄중하게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것은 온 우주를 불러서 이 말을 들으라, 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우리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이 주제보다 더 큰 주제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이제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 이제 그들하고만 관련된 이야기를 소근소근 조용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주제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공개적으로 할 만한 이야기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어서 이제 친구들한테만, 이제 가까운 사이하고 이제 가볍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이 주제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온 사람들이 다 들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큰 증인들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이 말씀을 이 표현을 보게 될 때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라는 이 말씀을 이 표현을 보게 될 때에 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을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걸 별로 중요하게 귀를 기울여서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그냥 하늘과 땅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내가 다시 한 번 주의를 상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의를 끌고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영원이 달린 문제입니다. 단지 며칠, 몇 달, 몇 년의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원한 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지금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어떤 한 불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이제 그러한 이 망나니 같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이런 불효자는 쎄고 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이렇죠. 다 이 불효자로 그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이제 부모를 이제 거역하는 이제 그러한 사람들 뿐입니다. 정말 자기의 부모에 대해서 순종하고 거역하지 않는 그런 효자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흔한 이야기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별로 관심 있게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은 사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어떠함을 핵심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는 그런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자식을 양육하는 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어렸을 때에 이제 다큐멘터리나 이제 어떤 이제 곤충들, 이 동물들에 대한 그 어미들이 그 새끼들을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보신 적이 있을 텐데요. 그 자연계에서 대부분의 동물들이 새끼들을 키우고 새끼들을 낳고 그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게 된 다음에는 그 어미들이 다 죽습니다. 저는 그게 볼 때마다 되게 좀 뭐랄까, 불쌍하다고 생각해야 되나요? 서글프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곤충들은 다 그러는 것 같아요. 곤충들은 자기 새끼들을 그 알을 낳고 그리고 이상하게 그 곤충들이 죽는 거예요. 그리고 죽어서 그 어미의 그 몸을 새끼들이 먹고 양분을 얻도록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떤 동물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펭귄은 이제 알을 낳으면 그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자기가 그 알을 꼭 안고 자기는 먹지도 않고 죽어갑니다. 그리고 그 이제 알이 부활을 하면 그리고 그 아비는 죽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그런 곤충이나 동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 자연계가 그렇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런 거 볼 때마다 저렇게 하등한 곤충들, 하등한 동물들은 참 안 됐다, 이렇게 어렸을 때는 그렇게 보면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커가지고 부모가 돼보니까, 제가 꼭 그런 곤충들처럼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 커갈수록, 정확히 그거에 비례해서 이 부모들이, 제가 죽어가고 있더라고요. 이게 사실 생명을 그 자식에게 주는 겁니다. 이 고등한 인간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뭐 저보다도 여기 나이 드신 분들은 더 많이 느끼겠죠. 정확하게 부모의 생명을 그 자녀들한테 전달하고 죽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사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 말은 굉장히 이제 심각한 그 죄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자녀에게 사실 그 은혜를, 그 모든 생명을 다 주고 이제 그렇게 양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녀는 거역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이죠.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이게 모든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죄가 가벼운 것은 결코아닙니다. 이것은 정말 패륜이고 정말 심판을 받아야 되는 그러한 이 죄인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3절에 보면은 다른 짐승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3).
대조적으로 이제 소와 나귀가 나옵니다. 이번에 말씀 집회에서도 이제 우리가 나귀에 대해서 말씀 집회 때 많이 배우게 되었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나귀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선지자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기 원하는 대로 해버리는 것이죠.
참 동물들을 보면 특별히 우리가 이제 개를 볼 때에 정말 놀라는 면이 있습니다. 요즘에 이제 그런 프로그램이 많이 있잖아요. 이제 이제 개가 훌륭하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보면은 정말 개가 정말 훌륭합니다. 아니 사람이 생각한 거 이상으로 너무나 충성돼요. 깜짝 놀랄 정도로, 아니 어떻게 저렇게까지 자기 주인에게 충성할 수 있는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사람에 비하면 미물인데 동물들도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제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주신 겁니다. 동물들도 이제 미천하지만, 사람처럼 완전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동물들도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 선택할 수 있는 제한적인 그 영역이 있어요. 그런데 그 영역 안에서 동물들은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안다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안다" 하지만 사람은 안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이만큼이 있다면, 그 모든 영역을 자기를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그 모든 자유 의지를 주인에 대해서 불순종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데 그걸 사용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머리카락 나는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키우는 게 아니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키워줘도 은혜를 알지 못하고 반드시 배신한다. 사람은 배신의 상징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배신을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이제 알고 계셨지만, 그 주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 명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주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이게 이 사람의 제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이러한 그 사람의 완악한 그 죄를 지적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그래서 이제 특별히 이제 이스라엘을 언급을 하시는데요. 여기서 이스라엘을 언급한다고 해서 "이스라엘, 저 사람들이 문제지." 이렇게 할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이스라엘을 이제 우리의 샘플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의 이제 샘플로서 너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희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겠다, 그래서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뛰어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이제 그런 샘플로서 그들을 택하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복 주셨어요. 그들이 큰 나라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에 이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셔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내시고, 그리고 그들을 하늘에서 떡을 내려서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마시게 하시고, 그 뜨거운 사막에서 햇빛에 해를 입지 말라고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덮으시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가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지금의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셔서 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나라를 세워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라고 모든 것을 다 준비해 주셨는데 이스라엘은 거기서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아니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 아니야. 엉뚱한 다른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지금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이게 이스라엘의 모습이고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이제 우리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다. 사실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사실 직접적으로 지금 생명을 주시고, 호흡을 주시고, 그리고 만물을 주셔서, 여러분이 지금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여기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정말 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이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들어보고자 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그 불효자들처럼, 정말 그 부모님이 자신의 생명을 죽이면서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부모를 떠나는 그 불효자들처럼 하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여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길로 계속 나는 살 거야라고 하신다면, 바로 여러분이 그 이스라엘이고 여러분이 그 불효자인 것입니다.
이제 5절 말씀부터 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이제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정말 그들이 이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어떠한 형편 가운데 있는지 보겠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5-6).
하나님을 떠난 이들의 지금의 모습은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성한 것이 없이 상하였다" 이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온 몸을 사용해서 죄를 짓습니다. 그 발바닥을 사용해서 이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자기가 원하는 그 길로 행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발바닥부터 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습니다. 머리도 그들은 죄를 짓는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악한 생각, 그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머리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것이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에 그 머리를 언급하고 있는데요. "온 머리는 병들었으며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그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상해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롭고 행복하고 어떠한 거리길 없이 거리낌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이제 그들의 머리는 이제 병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머리에 많은 지식을 자랑합니다. 참 인류의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을 지금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식이 우리를 평안하고, 참 복된 그런 안식을 누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많은 지식 가운데서,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없다 주장하는 그런 어리석음 가운데서 오히려 우리의 머리는 지금 아프고 병들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하나님 생각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온전히 행복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마음은 허무하고 곤고함으로 상해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이제 "피곤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살면 살수록 더 피곤함만 느끼는 것이 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6절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 상처를 짜고 싸매고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고침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 이 고통, 이 쉬지 못함, 이러한 것은 다른 것으로는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서는 어떠한 약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만 이것을 온전히 고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면서 이것을 고치고자 하냐면 이제 11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사 1:11-15).
여기서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여러분들은 이 사람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뭘 하고 있냐면 여러 가지 제물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절기를 지키고, 지금 이 달에 첫째 날이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를 하자. 그리고 거기에 예물을 가지고 가자.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것을 내가 싫어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마당만 밟을 뿐이라" 그것은 나를 번거롭게 할 뿐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의 종교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 내가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드리고, 정성을 다해서 이 예물을 드린다면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지, 하면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이제 그런 사람들의 정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여기 뒤에 보면 이사야서 1장에 뒷부분에 27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사 1:27).
공평으로 구속이 된다, 의로 구속이 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는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이 있어야지 이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 앞에 사람들이 나올 때 그런 의로운 해결 방법을 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양으로 많이, 뭔가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 같은 이제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제 길거리에 가다 보면 어떤 교회에서는 이제 100일 기도회 이런 게 플랜카드가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어떤 절도 그렇고요. 어떤 절에도 며칠 기도, 이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100일 동안 빠지지 않고 계속 기도하면, 정성스럽게 기도하면, 내가 이만큼 노력을 했으니까 그걸 하나님이 알아주시겠지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싫어하는 거다. 이것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이것으로는 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로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로운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너희가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이제 성회라는 것이 이제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여러 가지 예물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와가지고 그들이 그 자리에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제 한 가지 예인데요. 이제 친척들이 보통 이제 제사할 때 많이 모입니다. 가족들이 언제 많이 모이냐면, 이런 제사할 때 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죠. 그래서 이제 각자 자신의 조상에게 이제 정성스럽게 정성을 다해서 이제 제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그런 제사를 지낼 때 보면 꼭 가족과 친척 가운데 다툼이 생깁니다. 좀 잘 하다가 이제 오랜만에 만난 그런 가족과 친척 가운데 서로 이제 싸우는 것입니다. 이게 예전에 "너 나 이렇게 한 거, 너 왜 그렇게 했니?" 이렇게 말 한두 마리씩 나오다 보면 이게 다툼이 되고, 또 그런 제사를 준비할 때에 나는 이만큼 했는데 너는 뭐 나중에 와가지고 이게 뭐야. 이러면서 또 이제 싸우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 그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이제 그들도 이제 정성스럽게 또는 그들 나름대로 경건한 마음으로 모였겠지만, 이제 그 가운데 꼭 그와 같은 악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더 그 악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그렇게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서, 또한 절에서 그런 100일 기도를 할 때, 이제 그러한 모습들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게 이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정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하겠다. 너희 손에 그 기도를 드리는 그 손에 피가 가득해서 그 기도를 내가 받을 수가 없다. 이게 이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우리 자신의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로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해결책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해결책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해결책. 18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8-20).
여기서 이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기 이제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고 되어 있고, 20절 마지막 부분에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게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는 구원의 방법, 또 한 가지는 그 구원을 거절하였을 때, 또는 구원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받는 심판, 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는 구원, 한 가지는 그것을 거절했을 때 받을 심판.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이게 바로 여호와의 말씀이다. 앞뒤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달리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분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하시는 말씀은 "오라"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는 여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오라"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자기의 종교적인 열심과 정성으로 제물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러한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방법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그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앞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불효자구나, 정말 하나님께 마땅히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 나였는데 그렇지 못한 내가 참으로 큰 죄를 지은 사람이구나, 그걸 인정하고 나오는 게 여기에 "오라"입니다. 앞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정말 나는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온통 상한, 죄로 말미암아 상한, 그 머리와 마음이 상한 그런 상태 가운데 있는 죄인이구나라고 인정하면서 나오는 게 그 "오라"입니다. 여기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정말 나는 그러한 죄인과 상처뿐인 자로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나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오라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하는 것이 뭐냐면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입니다. 이 변론이라는 단어에서 아시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제 법정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제 법정에서 하는 것입니다. 판사 앞에서 증거를 제시하고 또 그 증거대로 판결을 내리고, 이것이 이제 변론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이었는지 밝히 드러내는 것, 이게 이제 변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이제 법정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만나러 엉뚱한 곳에 나아갑니다. 어떤 큰 나무 밑에라든지, 뭔가 이제 신령해 보이는 큰 높은 산 속이라든지, 뭔가 자신에게 어떤 위압감을 주는 이제 그러한 장소, 높이 세워진 그런 교회 건물이라든지, 이제 그런 데 이제 그런 데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법정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거기가 의를 다루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그 의의 문제, 그 의의 문제를 다루는 곳이 바로 법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만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딴 데 왠지 우리 마음에 뭔가 어떤 효염한 그런 느낌을 주는 이제 그런 장소가 아니라 정말 이것이 옳고 이것이 틀린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다.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 장소, 그 법정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시느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오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 법정에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죄를, 바로 여러분의 그 문제의 근원인 그 죄를 다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누군가 같이 희어질 것이요" 여러분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여기 이제 주홍 같다. 이 주홍이라는 단어는 이제 색깔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제 이 빨간색을 말하는 단어죠. 그런데 이 히브리어 원어에 따르면, 이 주홍이라는 단어가 두 번 염색하다라는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두 번 염색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옷감을 빨간색으로 이제 곱게 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한 번 가지고는 안 되고 두 번 염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이제 제대로 이제 빨간색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죄는 정말 두 번 염색한 것처럼 우리 마음에 깊이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뺄 수가 없는 그 빨갛게 물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 발부터 머리까지 상해 있고, 그 죄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그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 그런 죄, 이것을 내가 다른 것으로 여러 가지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많은 헌금을 들여가지고 빼고자 했지만 뺄 수 없었던 그 죄,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 법정에서 하얗게 완전히 빼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를 하나님이 빼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두 번째 나오는 이제 진홍이라는 것은 이것도 이제 염색과 관련된 것인데요. 이제 빨간색 염료를 내는 그 벌레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제 벌레로 이제 번역되기도 한 단어입니다. 그 빨간 벌레 같은 이제 그런 색깔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우리의 죄가 그렇게 아주 진한 그 벌레에서 나오는 그 빨간 액과 같이, 이제 그러한 죄라 할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러면 과연 무엇으로 우리의 그 깊게 물들어 있는 그 죄를 하얗게 씻는단 말입니까? 여기에 이 법정에 또 다른 한 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천년 전에 이 땅에서 거니셨던, 하지만 우리처럼 죄인이 아닌, 하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시기하여 십자가에 달아 못 박은 바로 그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이사야서에서 또한 기록된 부분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52장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사 52:13).
여기서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예언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분에 대해서 이제 기록한 것이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다"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서 1장에서 그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다 상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죠. 왜 우리가 그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다 상했습니까? 그건 우리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그 죄로 말미암아 그렇게 상한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 없이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분은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종"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 종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분입니다. 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이분이 우리보다도 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한 것입니까? 왜 우리보다도 더 그분이 상한 것입니까? 우리는 우리 죄로 말미암아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다 상한 것이 마땅하지만, 이분은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왜 그분은 인생보다 그 모양이 상한 것입니까? 그분이 여러분과 제가 받아야 되는 그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됩니다. 이 의로움이 없고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기는 법정입니다. 정확하게 죄냐, 의냐, 이것을 따지는 곳입니다. 이제 그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가 받아야 되는 그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대신 지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 없는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여러분과 저를 대신해서 상한 것입니다. 인생보다 더 상한 것입니다. 이 모든,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를 지으시고 그분이 상한 것입니다.
여기에 53장에 이렇게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참 우리는 정말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내가 원하는 길로 다 갔습니다. 그냥 그 불효자처럼 그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우리를 만드시고 키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거역하고 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갔지만, 이제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 지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남을 입었도다" 이게 우리가 이 상한 곳을 낳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상한 그것이 낳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를 대신해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을 맞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이제 나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이사야서 1장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9-20).
여기 이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제 선택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거절하고 배반할 것인지, 이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하나님께서 엄중한 말씀으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즐겨 순종한다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그 땅의 아름다운 소산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가나안 땅에서 나는 그 곡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의 말씀을 귀를 기울이고 "이것이 맞습니다, 하나님. 내 방법으로는 저의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다 상한 하나님을 떠난 불순종한 죄인입니다. 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 이것만이 저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그 땅의 소산을 즐겨 먹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거절한다면 이제 칼에 삼키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칼이라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에 반응하지 않고 나중에 한번 생각해 보겠다 이렇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 심판이 이제 여러분에게 언제 임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미룬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참으로 이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참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두 구원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