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4. 7. 2. 22:12
성경읽기 : 열왕기상 20장 22-30절(요약)
 
22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의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돌아오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
23 아람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저희가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할찌라
24 왕은 이 일을 행하실찌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곳에서 떠나게 하고 저희 대신에 장관들을 두시고
25 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충수하고 말도 말대로, 병거도 병거대로 충수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26 해가 돌아오매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점고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하매
27 이스라엘 자손도 점고함을 입고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저희 앞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은 염소새끼의 두 적은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8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29 진이 서로 대한지 칠일이라 제 칠일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을 죽이매
30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왕상20:22-30, 개역한글)
 
 
[ 22-30절 성경읽기 ]
- 벤하닷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지는지를 20장에서 볼수 있다. 20장 초반에서 벤하닷은 교만한여 이스라엘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고 방심했고 술에 취해 있었다. 이스라엘을 부스러기처럼 만들겠다고 호언 장담했다. 그러나 아람왕에게 패해 도망하고 그 후에 다시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을 치지만 다시 패배하고 골방으로 도망하게 된다.
 
아합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람왕을 물리쳤다. 그러나 벤하닷은 이스라엘을 재차 공격한다. 이처럼 우리의 대적은 재차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선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
 
27절에 보면 "염소 새끼의 두 적은 떼" 라고 나온다. 왜 이러한 표현이 있을까를 생각해 볼때, 방백소년 이백삼십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군대 칠천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합왕이 제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할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용기있는 젊은 소년들이 있었다. 이러한 소년들의 마음을 갖는것이 중요함을 생각한다.
 
또한 이 전쟁은 1만이 안되는 군대로 10만이 넘는 아람의 군대를 무찌른 사건이다. 이는 어떻게 보아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하신 것이다.
 
28절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고 한다. 13절에서는 아합왕에게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셨다면 28절에서는 거기서 더 크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신것을 알게 하셨다.
 
-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싸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인가 아니가임을 생각하게 된다.
숫자 상의 규모로 보면 이스라엘은 절대 대등하게 싸울수 없는 규모이다. 그래서 벤하닷은 술에 위한 상태로 방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각도의 소년들을 통해서 이 싸움을 시작함을 보게된다. 이 소년들은 하나님께서 이 싸움을 위해서 준비해두신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하며 또한 그 싸움을 임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21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첫 전투에서 크게 이긴다. 그리고 선지자는 22절에서 아합왕에게 크게 힘을 기르고 다음해 전투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우리 가운데 있는 싸움을 싸워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 이 전쟁은 아합왕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길수 있는 전쟁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우 적은 무리로 전쟁을 해서 이길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22절에서 아합이 힘을 길러야 하는것은 어떤 힘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영적인 무장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올곧게 서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그와같이 인도하는 것이 그에게 필요했지만 그는 그러한 영적인 자세를 가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30절에 전쟁에 패한 벤하닷을 놓아주는것을 보게된다.
 
또한 23-25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아람에서 되어지는 일을 보게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을 보시는 것뿐만 아니라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것들을 보고 계시며 듣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숨길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이 서로 대한지 칠일이라 제 칠일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을 죽이매 (왕상20:29, 개역한글)
 
칠일을 접전하여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이 칠일을 볼때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점령할때를 생각하게 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칠일간 언약궤를 들고 여리고 성을 돈것으로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다. 모든승리는 하나님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아합왕과 이스라엘, 또한 아람 군대에게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이 전쟁에서 나타내신다.
 
- 22절 말씀을 통해서 알수있는것은 아람왕이 다시 전쟁을 일으킬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전투는 한번 치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치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에 영적인 전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 하더라도 다음의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영역을 관장하시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복음을 전할때에 복음을 듣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것과 별개로 듣는사람이 구원을 받든지 못받든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는것과 같은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아람 군대가 왜 해를 지나서 오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벤하닷은 이번 전쟁으로 모든것을 잃었기 때문에 모든것을 수를 채워야 했으므로 충분히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난때가 가을로 추정된다. 겨울이 오면 이 지역은 우기 이기에 전쟁을 하기에 접합한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추정하게 된다.
 
23절에서 아람 군대는 하나님을 산의 신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들의 생각에서 나왔을찌라도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말이었음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28절)
 
- 이스라엘 소년방백 이백삼십이인을 생각하게 된다.(15절) 그 수는 적은 수였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정예요원이었다. 이처럼 수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때에 수가 적다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심을 생각하게 된다.
 
- 이백삼십이인이 전쟁의 앞에 선다는것은 아람의 십만의 군대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숫자이다. 곧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생각하게 된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는 전쟁임을 이를 통해서 알수 있다.
또한 23절과 28절을 통해서 하나님 없이 하는 전쟁(또는 모든 것)은 패배할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한 가장 큰 이유를 서로 섬기는 신이 다른 것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또 패할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들의 생각안에 하나님을 재단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