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레 2024. 7. 2. 22:06
성경읽기 : 열왕기상 18장 16-19절(요약)
 
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17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18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19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왕상18:16-19, 개역한글)
 
 
[ 16-19절 성경읽기  ]
- 괴롭게 하는자에 대해서 나온다. 아합왕이 엘리야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을때 그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자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형제 자매님을 괴롭게 할수 있고 세상 사람들을 괴롭게 할수도 있다. 그러나 담대하게 엘리야가 갈멜산으로 갈것을 요청했던 것처럼 우리는 묵묵히, 담대히 이러한 일을 해 나가야 한다.
 
18절에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라고 말씀한다. '바알들'이라고 하는것을 볼때에 여러개의 바알들, 우상들이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긴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게된다.
 
- 오바댜는 엘리아의 말을 듣고 아합을 만나서 그가 어디에 있는지 고한다. 이 시기는 사마리아 땅에 기근이 매우 심한 상태이다. 아합은 물을 구하기 위해서 사마리아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오바댜가 엘리야가 어디 있는지를 고했을때 엘리야를 만나는것을 물을 찾는것보다 중히 여기고 그를 만나러 온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두가지 입장을 보인다. 아합은 국가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19절)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자는 아합이었지만 아합은 엘리야를 보고 이스라엘을 괴롭게하는 자라고 말한다.
 
- 아합왕은 엘리야가 만나자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아합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에게 가뭄을 준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엘리야보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자"라고 말한다. 이에대해 엘리야는 아합의 집이 우상을 섬김으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것임을 알려준다. 아합은 엘리야에게 가뭄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어떻게든 처단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 가뭄의 원인이 아합의 집이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심판하고 계심을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엘리야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이 재앙이 우상숭배로 온것인지, 아니면 엘리야로 인해서 온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날수 있는 대결을 하자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450인대 한명의 대결이 이루어진다. 아합은 이 대결이 충분히 이길수 있는 대결이라고 생각한듯 하다.
그러나 영적인 측면에서 이 대결을 본다면 당연히 엘리야 선지자가 이길수밖에 없다. 신이 아닌 우상이 신이 할수 있는 일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합은 450 : 1 의 대결을 벌인다. 아합은 기근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 그 기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었다. 이 대결은 그와같은 마음으로 인해서 일어나게 된 사건이라 할수 있다.
 
-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 우상숭배가 아합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 오므리에서부터 해왔던 것을 말씀한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먼저 버리고 바알들을 좇아갔다. 그와같은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방여인인 이세벨과 결혼한것을 생각할수 있다.
 
지역모임 안에 세상적인 풍조가 드러나는것을 볼때, 왜 이러한 풍조가 있는가를 생각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명령에 잘 순종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가나안에 있는 신들 중에는 그리스의 신들과 같이 가족관계가 있다. 가장 높은 신은 엘이고 그 신의 아들이 바알이다. 그리고 바알의 아내가 아세라이다. 그들은 각각 관장하는 영역이 나뉘어져 있었다. 바알은 기후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바알이라는 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바알과 뗄수없는 아세라라는 신과 그 바알의 가족들의 개념을 바알을 섬기면서 이스라엘은 받아들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과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가나안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의 개념을 모두 받아들였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아들이시기에 얼마나 노여운 것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 사마리아에 비가 오지 않게 된 것에는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가 배경으로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약5:17, 개역한글)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하나님과 떨어져 있음을 보았고 백성들이 영적으로 회복되기 위해서 엘리야는 비가 오지 않기를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래서 아합왕이 보기에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하는 자였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 아합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멀어지게 하는 괴로운 일을 하고 있었다.
예를들어 자식을 굶기는 아비가 있고, 다른 아비는 자식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누가 자식을 괴롭게 하는 아비라고 하겠는가? 일반적으로 전자의 측면이 자식을 괴롭히는 아비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아비가 진정으로 자식을 괴롭게 하는 아비이다.
우리가 영적인 측면으로 말씀을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비가오지 않기를 기도했고,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고,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 제단을 사르기를 기도했다. 네번째는 비가 오기를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앞선 네가지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셨다. 마지막으로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도망가다 자기의 목숨을 거두어줄것을 하나님께 구했을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불병거를 내려 엘리야를 태워 하늘로 올리셨다.
 
- 엘리야는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할때에 솔로몬의 기도를 근거로 기도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35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왕상8:35-36, 개역한글)
 
또한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오바댜와 같이 정면에 나서지 않고 필요한 사역을 하는 분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각자 목표하신 목적이 있고 뜻이 있다.
 
-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자기의 결단과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엘리야는 자기 생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기도했다는 것을 우리의 마음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