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상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상 16장 21-28절
박이레
2024. 7. 1. 20:58
성경읽기 : 열왕기상 16장 21-28절(요약)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에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아 저로 왕을 삼으려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더니 오므리를 좇은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은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 동안 치리하니라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오므리의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 베푼 권세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오므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상 16:21-28).
- 디브니라는 사람이 21절에 나오는데 성경 다른 구절에서는 이 사람을 찾을수 없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그는 이스라엘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또한 오므리에 대해서는 그 아비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그가 정통 이스라엘인은 아닐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가 정통 이스라엘인이 아니라고 추측하는것은 무리가 있다.
디브니와 오므리는 약 4년간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내전이 일어났다. 엘라왕 밑에 세명의 장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므리, 오므리, 디브니가 그 세 장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마침내 디브니를 죽이고 오므리가 왕이 된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므리와 디브니에게 각각 그 마음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생각을 따라서 왕을 옹호하고 옹립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북왕국은 군사력에서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답지 않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사람의 뜻과 힘에 의해서 왕이 되는 모습을 볼수 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기름부은자가 왕이 되어야 했지만 이러한 절차가 전부 무시 되었다.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는 원어적인 측면을 보면, 대단히 참을수 없는 경지까지 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북왕국의 모습이 하나님을 얼마나 진노케 하였는지를 생각해 볼수 있다.
- 시므리의 성이 디르사에서 함락되고 자기가 잡힐것 같자 그는 왕궁에서 불을 놓고 죽었다.(18절) 디르사는 여로보암 왕이 디르사를 수도로 삼고 왕궁을 세웠다.
그 다음에 오므리가 나오는데 그가 디르사에서 6년을 통치하고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겨서 6년을 통치한다.
마지막에 가면 하나님께서 여리고에 대한 저주를 여호수아 시대때에 내리셨는데, 벧엘사람 히엘이라는 사람이 여리고를 건축한다. 그리고 맏아들과 막내아들을 잃게된다.
건축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 사람은 오랜 세월동안 뭔가를 건축하게 되는것을 보게된다.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성을 지었던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가지고 건물을 짓고하는것을 중요한 가치로 가지고 산다.
여로보암은 열심히 디르사에 왕궁을 지었지만 결국에는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이 그 왕궁을 불태우고 거하는 것을 보게된다. 이와같이 사람이 짓는것은 영원할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에는 영원한 이름이 있고, 영원히 예루살렘이(이후 주님께서 회복시키실때에)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오므리는 세멜이라는 사람에게 두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를 사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땅을 사고팔수 없었다. 그러나 오므리는 아주 당당하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들을 매매하고 있다.
또한 북왕국은 그 세대가 갈수록 점점 더 큰 악을 하나님 앞에서 짓게 된다. 이를 통해 부모가 자식에게 끼치는 영향력과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 오므리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때, 이름이 여호와의 종이라고 해석될수도 있고 하나님의 예배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가 개명을 하지 않았다면 그를 이스라엘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나라의 군대 장군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뽑는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5절에 시므리가 7일동안 왕이되고 거기서 죽음을 당하고 난 다음부터, 21절에 이르기까지를 4-5년으로 보고 있다. 그 기간동안 디브니와 오므리가 내전을 벌였다. 이 동안 국가적인 손해는 당연한 것이었다.
여로보암이 범죄의 길을 걸어갔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이 지정해서 세운 왕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반적인 세상국가들이 흘러가는 양상으로 보이고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에 대한 생각, 경배같은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인본주의적인 사상이 이 나라를 지배했을것으로 보인다.
오므리가 어째서 이전의 왕보다 더 악하게 행했다고 하셨는가를 생각해 볼때, 왕이 되는것부터가 하나님의 방법에서 벗어났을뿐만 아니라 모든 통치또한 그러했다. 그렇기에 그 오므리 아래서 아합이라는 더욱 악한 왕이 나올수 있었을것이라고 보인다.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상과 모습을 가진 국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
유다왕국도 북이스라엘과 비교해서 마찬가지로 잘못하였지만 그래도 남유다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모반하여 왕조가 엎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오므리는 영구히 살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땅을 사서 사마리아에 성을 세웠다.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찌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레25:27-28, 개역한글)
또한 오므리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왕상16:25, 개역한글)
그러나 세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오므리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만한 일을 많이 했다. 그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는 적지않은 일을 해냈고 또한 군사적으로 힘이 있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비문에서 모압을 정복했던 것으로 나와있다. 또한 이스라엘을 지칭할때 오므리의 집이라고 지칭할만큼 그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가 내전을 장악했을때에, 그 이후로는 내전이 없고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전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성공한 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왕기 기자는 이러한 것들을 기록하지 않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이전의 어떤 왕보다도 더욱 악을 행했다고 말씀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수 있는 교훈은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통해서 세상적인 성공을 거두는 자체(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가 과연 진정한 성도로서의 성공일까 하는 것이다.
성도의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오므리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일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대단히 실패한 사람이었다.
-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더라
(왕상12:16-17, 개역한글)
북왕국의 사람들은 여로보암이 중심이 되어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 라고 이야기 하고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갑니다.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뉜 왕국 중 북이스라엘은 그렇게 해서 세워졌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왕은 상관없고 자신들의 뜻을 대신하는것에만 관심이 있는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마치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같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고 세상의 모습이다.
또한 유다 아사왕 27년에 시므리가 북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유다왕 아사왕31년에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 그리고 사아왕 38년에 아합이 왕이 되었다. 그런데 오므리는 12년을 북왕국을 왕으로 통치했다. 곧, 그가 정식적으로 왕이되어 통치한 기간은 8년이지만 내전기간을 포함하여 열왕기상은 12년을 통치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시므리에 의해서 디르사에 있는 왕궁이 많이 손실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왕조를 시작할때에 기존의 수도가 아닌 새로운 수도로 이전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마리아는 수성하기가 매우 좋은 지역이었다.
후에 앗수르가 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함락시킬때도 삼년간 포위한 후에야 함락이 되는것을 볼수 있다. 지영학적으로 이 성은 굉장히 우수한 지역에 있는 수도였다는 것을 보게된다.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시작부터 잘못되었으며 사람의 생각으로 주도되는 나라는 문제 가운데 있을수밖에 없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시작부터 잘못채운 단추는 계속 더욱 더 잘못될수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