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상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상 14장 6-10절
박이레
2024. 7. 1. 20:51
성경읽기 : 열왕기상 14장 6-10절(요약)
"저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체 하느뇨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로 네게 고하리니 가서 여로보암에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찌라"(왕상 14:6-10).
추가교제 :
A. 아비야가 죽는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이 왜 하나님의 은혜일까?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찌라 (왕상14:12, 개역한글)
25 유다 왕 아사 제 이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26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한지라
27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저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저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28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왕상15:25-29, 개역한글)
여로보암의 다른 아들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아사를 써서 여로보암의 집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비야를 데려가지 않으셨다면 그는 매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을것이다. 곧,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은 학살이 있기전에 먼저 그를 데려가신다. 그리고 아비야가 죽을때에 온 이스라엘이 슬퍼하며 그를 장사하였다. 또한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이 아이만이 묘실에 들어갔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가 선한 마음을 가졌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로 죽게 하셨는가 생각할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선대하신 것이다.
- 아히야는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지만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이 여로보암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다. 이는 그의 통찰력이다. 그리고 그의 통찰력은 그의 지혜에서 이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곧 우리가 통찰력을 가질수 있는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는것이다.
성경에는 아들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몇몇 나온다. 애굽의 바로 왕이 열번째 재앙에서 그의 장자를 잃는다. 또 한사람은 다윗이다. 다윗도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아들을 잃었다.
그는 여로보암과는 다르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다. 또 자기 아들이 죽었을때도 다시 기름을 바르고 하나님을 찬송한다.
우리에게는 두가지 표준이 있다. 다윗과 여로보암이다. 다윗은 좋은 표본으로, 그리고 여로보암은 안좋은 표본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 모습들을 통해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를 알수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내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끓어지는 경험을 하셨다. 그러나 아드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셨다. 이는 앞선 예들과는 전혀 다른 경우의 것이다.
- 여로보암의 행동을 보게되면 자기에게 예언했던 아히야를 신뢰하는 것을 볼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것으로는 보지 않는것으로 보인다. 여로보암이 그의 처를 변장시킨 것에는 아히야를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으로 행하고 있다.
* 실로 : 6절에서 아히야가 예언하는 일들이 실로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알수 있다. 실로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실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여호수아서 에서는 사람들이 땅을 정복하러 나갈때에 실로에서 제비뽑아서 어떻게 기업을 나눌것인지를 정했다.
사무엘상에서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던 곳이다. 또한 엘리제사장이 있던 곳이 실로이다.
그 이후로 실로라는 장소는 성경에서 언급하는것이 눈에띄게 줄어든다.
그 뒤에 예레미야 7장 12절 말씀에서 실로가 등장한다.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의뢰하는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찌니라
(렘7:12-15, 개역한글)
한때는 하나님의 영광의 장소였던 곳이 사람들의 범죄로 인해서 이름이 사라지고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곧 여로보암이 자기의 처를 보내는 것은 같은일이 일어날것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볼수 있다. 이와같이 장소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 있다.
저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체 하느뇨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로 네게 고하리니 (왕상14:6, 개역한글)
------
- 여로보암의 처가 문으로 들어올때 아히야 선지자는 발소리를 듣고 말한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그의 처에게 변장해서 아히야를 찾아가라고 했다. 곧 여로보암은 아히야의 선지자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아히야를 속이고 그가 알고싶은 정보를 얻어올수만 있으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로보암의 처가 변장하며 올것이며, 그 오는 이유도 알려 주셨다. 여로보암 왕은 평소에 아히야 선지자에 대해서 살피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가 필요할때에 아히야 선지자를 속이면 정보를 얻으려고 했지만 모든것을 살피시며 아시는 하나님께서 결코 여로보암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하시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많은 위로를 얻을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는가? 세상을 살피시는가?" 라고 하지만 모든것을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고 또한 믿는다.
아히야는 하나님께 들은 명령을 여로보암의 처에게 말해준다.
- 여로보암의 행위(1-5절)는 자기가 필요할때에 하나님을 찾는 기복신앙과 닮아있음을 보게 된다. 만일 이때에라도 여로보암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시는 심판을 감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의 길을 돌이키지 않았다.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왕상14:9, 개역한글)
------
- 7절에 보면 여로보암을 주권자로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다. 주권자라는 단어의 원어로 보면 '위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위임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백성들을 통치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처럼 통치하라는 뜻으로 위임했다는 것이다. 곧 여로보암은 자기 임의대로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이끄는 봉사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서 떠났다. 이것이 그의 죄악이다.
또한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을때에 어떻게 섬겨야 할것을 말씀했다. 아히야 선지자는 다윗을 본으로 세워 그와같이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다윗과 같이 섬기면 네집을 견고케 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서 떠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악하게 변해 버렸다. 그는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이끈 장본인이 되었다. 그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를 분명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를 왕으로 세운분이 하나님이신데 그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숭배를 이스라엘로 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왕권을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겨야 했던 것이다.
* 등뒤에 (하레카이카) : 모욕과 경멸을 뜻한다. 그는 하나님을 모욕하고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상을 만든 것이다.
* 버렸도다(살레카) : 쓰레기, 가치없는것.
- 하나님이 왜 여로보암에게 이러한 저주를 내리셨는가? 그는 당연한 형벌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결혼을 했는데 만일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외도를 한다면 나는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그 이유는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내버려 둘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또한 등 뒤에 던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에 그 단어가 들어간 구절을 몇군데 생각할수 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38:17, 개역한글)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51:2, 개역한글)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등뒤에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등뒤로 버리셨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얼마나 경멸하고 계시며 또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 이스라엘의 범죄와 불순종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라는 호칭을 계속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