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하루 방문(요약)

솔로몬 성전의 건축 목적(요약글) / 박정호bro

박이레 2024. 6. 30. 13:57

성도 : 솔로몬 성전의 건축 목적 / 24년 6월 30일 일요일(요약2) / 박정호 형제님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솔로몬이 이에 담군 칠만과 산에 올라 작벌할 자 팔만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 육백을 뽑고 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 거할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 같이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대하2:1-6, 개역한글)

예루살렘 성전은 본래 다윗왕이 세우려고 했던 건물입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많은 전쟁을 했고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허락치 않으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역대상 22장 6-7절)
솔로몬의 손에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솔로몬이 어째서 성전을 세우게 되었는가 그 목적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알지 못할 때에 그 건축의 의미는 상실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건물의 내용을 보는것이 아니라 겉의 화려함만을 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순복음 교회를 저는 졸업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모였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제 마음에 방해가 되는것이 너울이었습니다. 아, 여기는 이단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는것이 궁금하니까 물어보니까, 말씀을 펴서 대답해 주었습니다. 예배드릴 때에 성경을 펴서 왜 그렇게 예배드리는지 듣게 될 때에 제 마음을 두드리는 것을 듣게 됩니다.

솔로몬은 첫째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첫번째 절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존영받도록 하기 위하여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모세는 르비딤에서 아말렉을 물리친 후에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짓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라고 말하는 이름인 것입니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17:15, 개역한글)

이 사건을 생각해 보면서, 연관지어 본다면,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선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대한 일들을 말해 줍니다. 우리 성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하여, 또한 그 깃발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주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존재의 목적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와 존영과 선양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솔로몬에게 그 성전을 짓는 그 목적을 분명히 하나님께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계속해서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지, 만일 드러내고 있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지 못하고 비방하고 비난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성전을 지어야 하는지, 그 목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제 베네쥬엘라에 다녀오신 성도님들을 만나고 잠깐 들었습니다. 베네쥬엘라에 들어가는데 35시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그곳은 환경적으로 너무나 열악했으나 행복하셨다고 합니다. 그곳에 영혼들이 수백명이 일어나고 그날에 60명에게 침례를 주고 이백여개의 모임들이 있는데, 주안에 있는 모습들을 보고 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한국에서, 이 대전에서 이루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주님 오실때까지 그 일들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성전을 지은 목적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입니다. 분명히 예배드리는 곳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향의 제료를 사르고, 향을, 떡을 진설하고, 하나님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대하2:4, 개역한글)

하나님의 여호와의 절기를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성전은 사실 하나님의 거처라는 것을 너무나 저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성전은 상징적인 장소일뿐만 아니라, 지성소 안에 안치된 법궤를 볼 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곳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시나요? 어떤 기쁜 마음으로 나오시나요? 누군가를 보기 위해서 나오나요? 새로운 분의 말씀을 듣고자 나오시나요? 물론 그럴수 있습니다만, 이곳에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앞에 나올 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나가겠습니까? 합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간다면 그 전에 그 조직들에 의해서 처리될 것입니다. 그 처리를 우리 마음 가운데 하고 나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고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일뿐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와서는 이 예배당이 여러가지로 돈이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 가운데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하야 합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가운데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과 갈등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아름답고 귀한, 이 놀라운 성전을 세웠습니다. 동일하게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 성도는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세우는 성전이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대하2:6, 개역한글)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이처럼 지상에서의 성전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땅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4:24, 개역한글)

화려한 외모를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찾으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앞 다퉈서 크고 멋진 건물을 짓는데 열심입니다. 거기서부터 성전이 지어진 목적을 잊는 것입니다. 건축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요즘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 내용에 대해서 찾지 않기 때문에 그런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막13:2, 개역한글)

화려함 가운데 내용이 없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 가운데 사단이 들어오면 많은 환난 가운데 아픔과 슬픔을 겪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겉이 아니라 그 내용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때에 참된 예배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느 지역모임에서 성도님들이 성도님들이 죽도록 섬긴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 배우고 와서 지금 섬기는 모임에서 섬겨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슬픈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간증을 보였던 모임에서 성도님들이 갈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뒷 얘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아뢰고 기도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완벽한 인도자는 주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외부에 알리면, 그것을 해결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지역모임에서 잘 섬기는 인도자는 그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를 불만으로 여기고 뒷얘기를 하는것은 사단의 계획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모임의 성도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고민이 없고, 숫자가 적다고 해서 고민이 없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주님께서 부르심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역촌 모임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성도님들께서 기도해주시기 원합니다.  

김보영 형제님께서 교도소 사역을 하신 소식을 들었을때, 형제님과 저는 20살 차이가 납니다.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주님의 일을 더 열심히 했을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열심히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지금 충성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이 교제 가운데 나올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수 있는 특권을 누릴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이곳에 성전이 되어져가야 합니다.
저는 이곳에 세번째 방문입니다. 제가 올때마다 비가 오는데요. 저는 비는 부르는 사람인것 같습니다.(웃음) 계속해서 대전 중구 모임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를 바랍니다. 모임이 세워지고 또 저도 이를 보고 배울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