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 은혜와 율법의 구분
성도 : 은혜와 율법의 구분 / 24년 5월 26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7, 개역한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개역한글)
14절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이셨는데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하나뿐인 독생자이시며 은혜와 진리로 대변되는 분이십니다. 이분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2:4-5, 개역한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개역한글)
구원을 향해 갈때, 하나님의 은혜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믿게 될때에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저희는 구원을 얻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롬11:6, 개역한글)
이를 쉽게 풀어보면 은혜와 행위는 서로 섞일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오직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이 은혜와, 행위로 대변되는 율법은 절대로 섞일 수 없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율법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와같은 일을 해라. 순종하면 내가 상을 주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는 조건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을 조명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저희들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하면 칭찬을 받고 하지 않으면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은혜라고 하는것은 저희들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뭔가를 받을 때에 열심히 했으니까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을 때에 은혜로 받는 것도 대가 없이 주는 것이라고 하니까 저희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는 무엇무엇을 해라고 하는것이 아니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었을 때에 그 믿음조차 하나님의 은혜였구나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2:11-12, 개역한글)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라고 요구합니다. 초등학생인 은성이에게 고등학생이 푸는 미적분 문제를 내일까지 풀어서 내라고 하면 은성이가 이를 할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은 이처럼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에게 이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보고 우리가 율법을 절대로 순종할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대로 은혜는 이를 행할수 있는 능력을 주고 그 말씀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은혜인 것이니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이 세상에 살고" 열심히 하면 살게 될지 몰라가 아닙니다. 한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 때에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데, 이는 저주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0, 개역한글)
그런데 은혜는 어떨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4, 개역한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정말 많이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라고 하는 것은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할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비슷하게 행해놓고 해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랑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일부 사람들이 해낸 거룩의 수준이 결코 이를수 없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7-29, 개역한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준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는 저희를 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분은이 그들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은혜로 받은 것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저희들에게 참된 확신을 주지만 율법은 저희들에게 참된 확신을 줄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100명 중에 한명이라도 해낼수 있는 난이도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인생도 해낼 수 없는 수준의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혹 그 가운데 나는 모든 율법을 해내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다다랐는지 확신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처한 상황처럼 보입니다. 그 일은 끝나지 않고 마음과 육체는 계속 고통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은 6일동안 일하고 7일째에 쉽니다. 그래서 쉴수 없습니다. 신약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언제입니까? 안식후 첫날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안식 후 첫날과 대응되는 것이고, 이미 일이 끝난것을 말합니다. 저희들이 뭔가를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 가운데 있는 자이고 저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끝낸 일을 받은 자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은혜의 큰 차이입니다.
구약에는 수많은 제물들이 죄를 사하기 위해서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을 영원히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0장에는 어떻습니까? 저희들의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십니다. 구약에서는 양들이 주인을 위해서 죽임을 당했지만 신약에서는 주인이 양들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은혜의 차이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돌판에 받아서 내려올 때에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본 모세가 돌판을 던져 깨뜨려버립니다. 이것이 율법을 받았을 때의 시작점입니다.
이번 시간은 은혜와 율법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이렇게 구분된다는 책자에도 나와있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