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사사기

성경읽기 : 사사기 6장 1-24절

박이레 2024. 5. 29. 14:01

< 성경읽기 : 사사기 6장 1-24절 >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주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사사기 6장 말씀을 교제하려고 합니다. 우선 하나님 말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찌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찐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삿 6:1-40).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우선 몇 가지 서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들이 성경읽기 집회를 하는 이유는 이제 말씀을 하나하나 객관적인 의미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형제님들이 함께 집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게 스피커가 말씀을 잘 이렇게 전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함께, 그래서 성경 읽기 도중에 형제님들도 이렇게 끼어드셔서 질문도 하시고 혹은 말씀도 이렇게 나눠주시고 해서 저희들이 함께 이 집회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필요한 때는 이제 형제님들을 지정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좀 말씀하시도록 권하는 시간을 좀 갖겠습니다.
우선 이렇게 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이제 사사기 1, 2장 했고 그다음에 이제 3장까지 이제 설명을 드렸는데요. 첫 번째 사사가 옷니엘이고 두 번째가 에훗시고 세 번째 사사가 누구죠? 드보라하고 바락이죠? 이렇게 이 다뤘습니다. 그래서 이제 첫 번째 사사고 그다음에 기드온이 네 번째 사사입니다. 이제 기드온부터는 이제 어떤 문제가 일어나냐면 이 첫 번째 사사들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싸우는 싸움을 싸우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문제가 없습니다. 사사 자체에 문제가 없어요. 옷니엘에게 문제가 없고 에훗에게 문제가 없고 그다음에 바락에게 문제가 없습니다. 기드온부터는, 이제 네 번째부터 이제 7번째 사사, 삼손까지는 사사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점이 약간 차이가 있는 대목으로 넘어간다라고 하는 걸 전제로 하고요. 그다음에 이제 첫 번째 사사는 이제 세상, 육신, 그리고 사단을 사단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제 네 번째 사사부터는 무엇과의 싸움인가? 이런 것들을 좀 이렇게 살펴보시면서 교제 할 수 있겠고요.
전체적인 사사기 6장을 제가 쭉 읽었는데요. 1절부터 40절까지 양이 좀 되는데요. 40절까지를 내용을 분석해 보면 1절은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2절부터 6절까지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미디안 손에 이렇게 파신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가 나오고요. 그다음에 그 징계하니까 이제 이스라엘이 부르짖죠. 그래서 7절부터 10절까지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주십니다. 사사를 보내시기 전에, 기드온을 일으키시기 전에 선지자를 먼저 보내주십니다. 이게 7절부터 10절이고요. 그다음에 이제 11절부터 18절까지는 주님이 기드온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이제 기드온과 대화가 이어지고요. 그다음에 19절부터 24절까지는 기드온이 이 주님께 경배드리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이건 사적으로 경배드리고요. 그다음에 25절부터 32절까지는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기드온이 바알단을 훼파시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33절부터 35절까지는 기드온이 이제 싸울 군사를 모집합니다. 그리고 36절부터 40절까지는 자기가 승리할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을 하나님과 관련돼서 이제 얻어내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이제 분류하고요.
그래서 이제 각 이렇게 소분류를 했을 때 그 대목을 교제하고 다음 번으로 넘어가기 전에, 꼭 이제 형제님들 가운데 이제 한 분의 의견이나 질문이나 이런 걸 받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1절 들어가겠습니다. 1절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삿 6:1).

이게 이제 이스라엘이 다시 범죄하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이제 형제님들께서 자유롭게 교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이기범 형제님 : 서론적인 것을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이제 6장 1절에 보면은 이스라엘 자손이 "또"라는 데 대해서 저희가 한번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봅니다. 사사기가 지금 전체적인 주제가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이제 옳은 대로 이제 행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저희가 많은 교제를 통해서 이제 배웠는데요. 40년 동안에 5장 마지막 절에 보면 "그 땅이 40년 동안 태평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태평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하나님을 순종하고 또 하나님을 따르는 것으로 이제 가져오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런 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악을 행했다"라고 그리고 판단하시고 또 여호와께서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 손에 이렇게 붙였다"라고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저희가 아까 처음에 이제 형제님께서 정리를 해 주신 것처럼 기드온 전에 있었던 이제 세 번의 세명의 사사를 통해가지고 세상과 육신과 이제 사단이라는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이제 가장 주요 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셋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저희가 보았고요. 그리고 이번에는 이제 미디안입니다. 미디안 같은 경우에는 그 뜻 자체가 싸움이고요. 이게 분쟁이고, 이렇게 또 투쟁이라고 이제 할 수가 있는데요. 이러한 것은 사실 '세상으로부터의 영향력'이라고 한번 이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성도님들께서 찾으셔도 좋고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는데요. 야고보서 3장 14절부터 16절까지를 읽게 되면은 그러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 3:14-16).

그래서 이제 미디안은 '세상으로부터의 영향력' 그리고 이 땅에 속한 것을 갖다가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쟁, 다툼으로 이어지고요. 또한 그 분쟁은 저희가 6장, 7장을 통해서 만약에 이제 개인적인 그런 분쟁, 다툼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드온은 믿음으로 이제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게 개인의 마음 가운데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그런 유약이 있을 수가 있고요. 또한 가정적으로도 그 아버지가 이제 우상을 섬겼다면 자신은 그 우상을 베어버려야 되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고요. 또한 민족적으로도 므낫세와 또 에브라임 간의 여러 가지 이제 문제가 이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이제 분쟁, 다툼,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저희가 볼 수가 있고요.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면 미디안 같은 경우에는 이 싸움, 분쟁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 미디안이 사실은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두라하고의 관련 속에서 낳은 자식인데요. 그 창세기 25장 1, 2절에 보면 있습니다. 이 미디안은 사실 그렇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미디아는 그때 그때 성경에 나온 것을 보게 됩니다. 저희가 요셉이 애굽에 팔릴 때 그때 미디안이 이제 나오게 되는데요. 이것을 보게 되면 이런 세상과의 어떤 부정적인 연결고리라는 것을 창세기 37장 28절에서 알 수가 있고요. 또 하나는 민수기이에 보면은 이제 고스비 사건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이제 궤계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25장 18절에 보게 되면은 궤계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의 어떤 영향력 그리고 그것은 분쟁을 가져오고 이것이 이렇게 이스라엘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또 민족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1절에 보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돼 있습니다. 방금 전에 말씀 집회에서 저희들이 이제 17장 6절 말씀을 보면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라고 돼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6장 1절에서 여호와 목전에는 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당연한 행동이고 그것이 맞는 거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악한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말씀을 벗어나서 이제 우상을 섬겼을 때 사람이 보기에는 옳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것이 악한 것이다라는 것을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그러한 삶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6장 1절을 통해서 저희들이 교훈받을 수 있겠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그러면 여기 이제 1절 제가 아까 분류한 1절 한 문단 이제 한 대목이 끝났으니까, 형제님들 가운데 혹시 질문이나 또 혹시 교제하실 내용이 있으면 자유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1분 이상 침묵이 흐르면 지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지성 형제 왜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죄를 또 지을까요?

- 방지성 형제님 : 그러게 말입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그러면 다시요, 지성 형제는 자기 개인적인 하나님 앞에서 삶 속에서 내가 이거 반복적으로 실수하는데 이거 좀 고쳤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건 없나요? 왜 그래요?

- 방지성 형제님 : 있습니다. 연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예, 좋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거죠.
왜 이스라엘은 이제 7번이나 하나님께서 죄를 범할 때마다 징계하시고, 또 징계가 고통스러울 때 부르짖을 때마다 변함없이 구원해 주셨는데, 왜 그런 일을 반복하는가에 대해서는 이 앞에 이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이방 족속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와서 가나안을 완전히 쫓아내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 땅에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겠다. 너희들은 이제 가나안 족속과 같이 살아야 된다. 그리고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고 함정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거죠.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 족속은 이제 평안하다가도 이제 평안한 기간 동안에 가나안 족속들을 사는 걸 보니까 영향을 받는 거예요.
우리로 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혼을 구원하시고 육을 변화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육체를 놔두신 거예요. 몸, 혼, 영혼으로 돼 있는데 영과 혼을 구원하시고 몸을 놔두셨어요. 이게 이유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런 부분을 어떻게 우리가 믿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이제 사사기에서 실패를 통해서 저희들이 배울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1절은 그다음에 혹시 넘어가도 혹시 또 질문이나 혹시 교제할 내용 있으시면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는 이제 2절부터 6절까지입니다. 2절부터 6절까지인데 우선 2절 읽겠습니다.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삿 6:2-3).

4절, 5절, 6절까지 성도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고 또 이제 성도님들이 함께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이전에 이제 에훗은 에글론 왕에게 이제 공물을 바치러 나아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미디안의 특징은 이제 이스라엘 땅 안으로 이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어올 때에 이제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과 함께 연합하여서 이렇게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디안이 이제 세상적인 영향력을 말씀한다고 생각했을 때, 아멜렉은 이제 에서의 자손으로 육신을 나타냅니다. 세상적인 영향력은 육신을 사용하여서 우리 가운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목적은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적인 영향력과 육신이 이제 신자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아서 원하는 것은 신자로 하여금 마땅히 누려야 할 기업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제 메뚜기와 같이 들어오고, 또 그들은 가사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세상의 영향력은 처음에는 작아 보이지만 그것은 힘이 강하고 또 넓은 영역까지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와 같이 되었을 때 이제 미디안은 토지 소산을 멸하고 식물과 양이나 소도 남기지 아니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신자가 세상적인 영향력 가운데 육신적으로 살 때 결과는 먼저 이제 식물을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의 식물은 이제 주님이십니다. 주님에 대한 이해 가운데 그는 성장해야 되는데, 이제 그는 이제 주님을 알아가는 데서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과 소가 부족하게 됩니다. 양과 소는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것인데 그 제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배가 끊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귀가 남기지 않는 것을 볼 때 나귀는 섬김을 나타냅니다. 지역 모임 가운데, 섬김 가운데 그는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토지 소산이 없는 것을 볼 때 열매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나타나야 될 그 열매가 그의 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이제 미약하게 될 때, 심히 미약하게 됐다라고 합니다. 그는 이제 마땅히 세상을 믿음으로 이겨내야 되는데, 믿음이 심히 약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위대한 사람과 이런 아말렉 동방 사람이 들어올 때 숨게 됩니다.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본래 그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만국에 하나님을 증거할 책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그는 오히려 숨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자가 결국은 심히 연약하게 되었을 때 그는 세상을 향한 간증을 잃게 되고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볼 때 그는 이제 믿음의 큰 담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2절 시작은 이제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라고 돼 있는데요. 세상에 대해서 우리는 올바른 평가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세상이 작은 것처럼 보일 때, 메뚜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메뚜기 떼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작은 것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자리 잡도록 허락하지 않아야 됨을 교훈으로 또 배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옆에 형제님께서 이제 이 말씀에 대해서 이제 신자 개인적으로 이제 적용할 수 있는 말씀으로 저희들이 교훈을 받았는데요. 또한 이 말씀은 저희들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일하는 교훈으로도 저희들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방금 말씀해 주신 대로 미디안이라고 하는 것은 분쟁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분쟁은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과 함께 옵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것, 그리고 이제 동방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이제 아브라함이 나온 곳입니다. 그곳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이 함께 들어오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대표적으로 고린도교회, 고린도교회가 세상적인 것이 들어왔고 이제 육신적인 것이 들어온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제 분쟁이 있었던 교회이고요. 이제 그러한 어려움이 어떻게, 이제 원수들이 어떻게 역사를 하냐면, 첫 번째로는 이제 무수히 이제 올라옵니다. 그렇게 많은 수가 올라옵니다. 정말 압도적인 힘으로 이제 공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이제 공격을 받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짐승과 장막으로 올라옵니다. 아주 빠른 속력으로 올라옵니다. 교회 내에 일어나는 여러 어려움과 특별히 이런 분쟁들은 이제 빠른 속도로 교회에 퍼지게 되고, 그리고 "가사까지" 이제 지도 찾아보시면 요단에서부터 서쪽으로 가장 끝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그 하나님의 교회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쟁이 압도적으로, 그리고 빨리,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망가뜨리는 것을 이제 보게 되는데요. 그 결과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의 결과가 이제 앞에서 형제님께서 양과 소에 대해서 이제 나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그들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서 구멍과 산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들 가운데 연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분쟁은 하나님의 교회에 연합을 깨뜨립니다. 반대로 이제 저희들이 앞으로 공부하겠지만 기드온은 그 연합을 이뤄냅니다. 이제 이뤄내서 그 이제 원수들을 쫓겨내는 모습을 보게 되고요.
두 번째로는 음식이 없습니다. 그 지역교회 성도님들이 영적으로 약해지는 것입니다. 먹을 게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 분쟁으로 인해서, 세 번째로는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그 교회에서 많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수고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오는 세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과 함께 들어오는 이 분쟁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이루어내는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도 저희들이 교훈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이 본문 말씀을 저희들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이제 어떤 의미를 어떤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셨고 또 교회적으로도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들을 때마다 하여간 공감이 되는 거죠. 저희들이 모임 생활을 하신 분들은 또 구원받은 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신 분들은 아마 이렇게 말하면 아마 다 울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저희들의 안타까운 경험이었고, 또 그런 과정을 통과해 와서 지금 주님께서 이제 정확하게 말씀으로 이해하고 또 말씀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극복하게 하는지 배우게 하셔서 참 감사한 내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형제분들 가운데서 혹시 여기 질문이나 또 교제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시죠.

없으시면 그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에는 7절부터 10절까지 하나님께서 부르짖었을 때에 그다음에 선지자를 보내주신 내용에 대해서 형제님들이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네 저희가 사사기 앞에 부분에서 살펴봤던 부분들에서 보면은 지금 6장 6절부터 나타나는 이 부분이 앞에서 나타났던 패턴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겠습니다. 사사기 3장 9절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죠. 그때 이제 하나님께서 한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마찬가지로 4장 3절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한 응답을 해주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 동일하게 이제 사사기 6장에서도 이와 같은 미디안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이제 6장 6절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로 그 구원자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이제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이제 말씀하시는 것을 저희들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아까 사회자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왜 이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잘못된 것들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가, 그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저희가 엊그제 어제 말씀 들은 바로는 그들 가운데 이제 참된 회개가 있지 않았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사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이런 징계나 심판이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그와 같은 징계와 심판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원인이 무엇이고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들이 알고 참된 회개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데 이제 그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한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에게 이제 알려주시길 원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선지자의 이름은 여기 나와 있지 않죠. 그렇지만 이제 우리가 그 선지자가 했던 말의 내용은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8절에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종살이하던 곳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볼 수 있고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고, 그다음에 이제 9절에서 학대 가운데 있었던 자들을 건져내서 이제 그들을 학대하던 자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 하나님께서 또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보게 되고, 그와 같은 은혜에도 불구하고 이제 10절에서 그들은 이제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을 드러내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정복하신 땅을 그들이 점령하고 그들을 압도해야 될 텐데, 오히려 반대로 그들이 이제 그들의 신을 두려워하여서 우상을 숭배하였던 것이 이제 이 미디안에 의해서 이와 같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알기를 원하셔서 이 선지자를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앞에 형제님 말씀해 주신 대로 단지 이제 그들이 어려움 가운데서 그 힘든 것을 모면하려고 이제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정말로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위해서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 이제 선지자를 통해서 이제 말씀을 해 주십니다.
특별히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항상 이제 신실하셨다라는 것을 이제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항상 신실하게 그들을 대해오셨다. 특별히 이제 그들을 이제 애굽에서 이제 건져내셨다라는 것을 이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을 이제 상징하는 애굽에서 이제 건지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해서 어떠한 뜻과 어떠한 부르심으로 그들을 불러낸 민족인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하나님 안에 참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애굽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또 구원을 주시고 종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이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들을 애굽 사람의 손과 이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보존하셨습니다. 계속 하나님 안에 이제 보존과 안전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나안 땅에 왔을 때에 이제 그들을 그 땅을 차지하도록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이제 승리를 주시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그들에게 참된 기업을 소유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이제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가난한 사람의 땅의 신들, 아무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고, 오히려 그들을 섬기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서 우상숭배하는 그 근본적인 잘못을 지적을 하고 계십니다.

- 이기범 형제님 : 예, 7절에서 10절을 보게 되면은 지금 이스라엘 자손의 비참한 상태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가 나옵니다. 10절에 나온 것처럼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중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제 원인입니다. 지금 이러한 비참한 상태는요. 얼마나 이스라엘 자손이 지금 비참한가를 보게 되면 지난 세월 동안의 악재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희가 에훗 같은 데 보게 되면 그들이 압제는 받았지만 그래도 공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이렇게 받쳤던 것이고요. 그리고 그전 시대에 보게 되면, 저희가 5장에 보게 되면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마는 5장 6절에 보게 되면,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삿 5:6).

비록 무서웠지만, 무서워서 큰 길로 다니지 못하지만은 작은 길로는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6장에 보게 되면 교제가 된 것처럼 그들의 상태는 가장 비참합니다.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서 이렇게 숨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변명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의 영향력이 더 무서워졌다. 왜냐하면은 이 미디안은 약대를 들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약대는 낙타죠. 이렇게 약대는 말 그대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아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기들에게 이렇게 영향을 준다고 이렇게 변명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보기에는 지난 세월에는 그래도 우리가 예전 조상들이 압제를 당할 때는 그나마 세상이 조금 약했는데 지금은 세상이 더 세져서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10절에 나온 것처럼 그 원인은 그들의 그 세상의 영향력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다"라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하게 정리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잠깐 말씀드리면요. 지금 아까 아까 옆에 형제님께서 이제 선지자를 보내신 이유가 그들의 진실된 회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이제 보내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희들이 진실된 회개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 여기 내용을 보면 저희들이 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해주신 일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해주셨는가? 이제 여기 쭉 돼 있고요. 두 번째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하나님인가를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기 보면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그분의 말씀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아모리 사람의 땅 신들을 두려워 말라" 이 세 가지가 저희들로 하여금 참된 회개를 일으키는 겁니다.
아까 앞에서 형제님께서 이제 고린도전서 말씀을 찾아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은 저희를 값 주고 산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각해 봐야 됩니다. 정말 정말 비교할 수 없는 분인데 그분으로 값주고 사신 거죠. 그리고 하나님 말씀은 영광을 위해서 너희들의 몸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세 가지가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참된 회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예, 감사합니다. 선지자를 보내주신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이제 교제가 됐고요.
그리고 참으로 필요한 것은 회개인데,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부르짖었더라라고 돼 있지만 회개했다라고 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필요한 것은 회개인데 선지자가 회개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요구하지 않았는지, 회개는 선지자 말에 의해서 이 회개가 일어나게 돼 있는 거죠.
이제 그런 것들을 저희들이 살펴봤는데요. 저기 또 혹시 형제님들 가운데서 보충할 만한 이야기가 있으시면, 저기 예현 형제 혹시 뭐 더 하고 싶은 말 없어요?

- 조예현 형제님 : 없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그러면 이게 잘 이해가 된 걸로 보고 그다음 구절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11절부터.. 한 가지만 더 잠깐 보겠습니다. 저희들이 많이 교제했던 내용 중에 하나인데요. 저희들이 하나님이 두려우면 세상이 두렵지 않은 거죠. 세상이 무서우면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거죠.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아모리 신들을, 가나안 신들을,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걸 두려워하고 하나님은 안 두려워해버리게 됐다. 이런 걸 좀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다음에 넘어가서 이제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이제 선지자를 보내신 다음에 이제 사사를 일으키시기 위해서, 기드온에게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 기드온과의 대화, "용사여" 하는 것부터 이런 대목 교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재훈 형제님 : 8절에서는 이제 "여호와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셨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11절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이르렀다"라고 하시면서 차이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여호와의 사자가 바로 성육신 이전에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우리 주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현현"이라고 이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른 곳은 오브라였고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셨다라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브라라는 것은 이제 '티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힘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상수리나무라고 하는 것은 이제 힘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티끌 가운데 우리는 어디서 힘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아비에셀은 '나의 아버지는 도움이시다'다라는 뜻이고요. 요아스는 '여호와께서 주셨다'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상수리나무에 주님이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티끌 가운데서, 그 연약한 가운데서 사람이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주님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주님의 능력이 거하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렇게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도움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며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주님을 통해서 공급되는 것입니다.
이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다라고 돼 있습니다. 보통 타작이라고 하는 것은 타작마당에서 하는 것입니다. 타작마당은 산 중턱에 공개된 장소, 넓은 곳에서 하는 곳입니다. 소를 또는 수레를 이용해서 타작했을 때 많은 알곡들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포도주틀은 바위를 보통 깎아서 만든 작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제 포도주는 없고 이제 기드온은 좁은 곳에서 이제 밀을 타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고, 또 얻었던 소출들도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던 이유는 위대한 사람에게 숨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 기드온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원은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산에 구멍과 굴과 산성에서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숨지 않고 이제 포도주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마도 작년에 얻었던 곡식들, 그 조그마한 곡식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가기만을 기다리며 그것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 해에 얻은 신선한 알맹이, 그 곡식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비록 작은 거라 할지라도 그것을 귀히 여기고 자기와 가족들과 백성들이 먹을 그 밀을 타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다른 점입니다. 그는 비록 연약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제 곡식을 얻기 위해서 타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큰 용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니라" 우리는 세상에서 이제 밀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생각한다고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타작하여 알맹이를 얻는 작업은 힘들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일들과 많은 부족한 시간 가운데서, 때로 이전에 우리가 들었던 말씀으로 연명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대적의 위협 가운데서도 신선한 곡식을 얻기 위해 자기와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그 타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것들을 교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밀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이제 큰 용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왜 큰 용사일까요? 그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큰 용사인 이유는 여호와께서 기드온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그의 큰 능력의 비밀입니다. 그리고 이미 교제된 대로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줄 양식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13절에서는 그가 하나님 백성의 안위에 대해서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그는 자신의 연약함, 겸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제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기에 그를 큰 용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지금 이스라엘은 이제 미디안의 이제 공격 가운데 있고요.
그들을 이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기드온을 이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이제 저희가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지역교회 안에서 이러한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제 저는 부르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이제 앞에서 형제님이 잠깐 말씀을 해 주셨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그럼 부르시는가를 저희들이 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그 땅에 음식이 없고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음식을 조금이라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이제 홀로 이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제 밀을 타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밀을 통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이제 가족들에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업을 떠나지 않고 그 땅에서 나온 곡식들을 추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걸 교회에 적용을 한다면, 정말 이 어려운 하나님의 교회 상황 속에서 그는 개인적으로 말씀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그리고 그 힘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볼 수 있고요.
두 번째로 13절에 보면 마지막 부분에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징계다라는 것을 그는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제 12절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기드온은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는 지금 하나님의 백성, 자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내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15절에 언급된 대로 그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저는 미약한 사람입니다. 아주 작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러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모임을 이제 회복시키신다고 이제 교훈을 이제 받게 됩니다.

- 강성찬 형제님 : 그래서 이제 기드온의 특징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는 이제 실질적으로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제 오브라의 사는 사람이고, 그것은 이제 티끌, 이제 먼지, 그런 이제 하찮은 것을 이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제 하는 말들, 그리고 그가 이제 여러 번 또한 두려움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확신을 필요로 한 것을 이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그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이제 자신이, 자신의 가족이 가장 영향력이 없고 아마도 이제 수가 적은 그런 가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 중에서도 자신이 제일 작은 자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이제 분명한 사실이었을 텐데,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사자는 이제 그에게 이제 큰 용사라고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어떤 다른 육신적인 힘이 있어서가 아니고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제 큰 용사라고 불렀다고 생각이 듭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그 믿음의 사람에 대해서 언급을 할 때에 이제 기드온을 이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특징을 우리는 이제 앞에 형제님들 교제해 주신 대로 이제 그런 부분들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은 말씀을 소중하게 여긴 것입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얻는다 할지라도 이제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빼앗기지 않게 지키고 이제 간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적은 말씀들을 이제 깨닫고 알게 되고 그런다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가 이제 소중하고 귀하게 여긴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분을 쓰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미디안으로 인해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제 당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힘이 약해졌고 이제 미디안이 세력을 크게 해가지고, 그런 환경 때문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앞에 교제하신 대로 정말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를 심판하고 계시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지, 애굽에서 어떻게 건지셨는지, 그 말씀을 창념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은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이제 우리를 이렇게 말하는 것을 통해서, 또한 믿음의 사람은 이제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행동하고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는 것을 이제 생각하게 됩니다.이제 이런 면에서 이제 여호와의 사자가 이제 큰 용사다라고 그를 말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기범 형제님 : 한 가지만 짧게 덧붙이겠습니다. 11절에 "포도주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저희가 이제 오늘 6장하고 7장을 교제할 텐데 이렇게 제가 뒤에 말씀드릴까 하다가 이렇게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6장 11절에 이제 포도주 틀이 나오고요. 그다음에 7장 마지막 절, 7장 25절에 이제 포도주틀이 나옵니다. 저희가 6장, 7장을 이해할 때 이렇게 포도주 틀로부터 시작해서 포도주 틀에서 끝난 이야기라고 저희가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 이제 형제님들께서 교제를 해 주신 것처럼 6장 11절에 포도주 틀은 어떤 면에서는 이제 아주 힘든,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이 굉장히 부족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럼에도 이 포도주 틀을 통해서 이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통해서 그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7장 25절에 포도주 틀에서 이스라엘 역사의 영원히 남을 승리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 미약하지만 그 말씀을 읽었던 것이 이렇게 승리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7장 25절에 나오는 이 승리가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 먼 승리여서 그런 승리가 있었나 보다 할 수 있겠지만, 시편 83편 11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의 한 대단한 승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포도주 틀에서 시작했던 이 말씀을 읽었던 그 열매를 모았던 것이 이렇게 큰 승리로 이어짐을 저희가 볼 수가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네, 짧게 저도 추가해 보겠습니다. 11절에서 기드온이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였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적당하지 않은 방법이죠. 그다음에 이제 이 장소 자체도 부적절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은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밀을 타작하고 있었던 것이고 저희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이것을 해서 무엇하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그 일을 꾸준히 하였던 것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 이와 같은 자를 선택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앞에서 들었고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또 교회를 위해서 어떤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보고 계시고 또 그와 같은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려고 하는 자들의 그 마음을 또 보이지 않는 행함을 다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것에 따라서 그를 대하신다는 것을 발견해 보고요.
하나 더 기드온이 선택된 여러 가지 이유들을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 더 저도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13절에서 그 마지막에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이렇게 이제 현실 인식을 하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이렇게 되면은 굉장히 낙심할 것 같고 그다음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주틀에서 미를 타작하였던 것을 봄으로써,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려고 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일꾼은 그와 같은 자라고 생각이 듭니다.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는 자라고 생각이 듭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네, 감사합니다.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서 이제 타작을 하고 있었던 것은 미디안 사람을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의 경우에 이제 특징 중에 하나가 이제 두려움이라고, 겁쟁이입니다. 그런 겁쟁이를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놀라운 이제 담대한 승리를 허락하신 거죠.
그런데 이제 이때 그러고 있는데, 아주 구차한 방법으로 겨우 그 곡식을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큰 용사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걸 그냥 그냥 세상적으로만 생각하면 이건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러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미약한 기본을 "큰 용사여"라고 부르신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이제 저희들이 계속 성경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바꾸십니다. '아브라함' 사래를 '사라' 이제 대표적인 게 신약으로 오면 시몬을 '베드로'로 바꿔주십니다. 베드로는 반석입니다. 돌이라고 하는 뜻이죠. 베드로처럼 이렇게 좀 충동적인 사람인데 그를 이제 이렇게 돌멩이처럼, 굳건한 사람으로 바꾸시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큰 용사는 이 미약한 기드온을 하나님이 변화시킬 것이다. 내가 너를 큰 용사로 만드시겠다라고 하신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보고요.
그다음에 이제 기드온이 질문을 합니다. "아니, 하나님 그러면 이건 어떻게 된 거고,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그 기적은 어디 갔는데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세상에 이런 결과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죠. 하나님 대답 안 합니다. 왜 안 하시죠? 제 개인적으로는 이미 선지자를 통해서 대답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앞에 선지자가 말했기 때문에, 주님이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혹시 이제 성도님들 가운데 이 단락에 대해서 혹시 교제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이제 저희들이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성경 읽기 참석하려면 준비하고 와야 됩니다. 그냥 말씀 들으러 오면 안 됩니다. 그래서 다 준비하고 와서, 그리고 저희들은 어떤 걸 환영하냐면 틀린 말을 환영합니다. 틀리지 않고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 혹시 이런 거 아닐까요? 이렇게 하면서 저희들이 다 함께, 저희들이 전체적인 성경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러므로써 함께 주님을 더욱 담대히 신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19절부터 24절까지 기드온이 주님께 경배, 예배드리는 대목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대목인데요. 이 부분의 영적인 의미와 어떤 제사를 드렸는지, 이런 것들을 교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기도원이 이제 표징을 이제 구하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17절에서 한번 구하고요. 또 6장에서는 36절 이후로 다시 한 번 이제 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이제 보았을 때 딱 이제 생각하게 되는 건 '이렇게 해도 되나?' 이런 생각이 이제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런 기드온의 이제 구함에 대해서 책망치 아니하시고 이렇게 들어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불신과 연약한 믿음을 이제 구분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고 믿음으로 반응해 해야 될 때 불신하는 경우에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연약한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늘 확신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그 손을 뻗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오래 인내하시고, 또 기다리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또 능력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17절에서는 이제 먼저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이제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후에 볼 36절 이후부터는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시는지, 이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신지를 이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또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하신지, 이제 그것들을 이제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특별히 이제 기드온이 드렸던 이제 가지고 온 것을 볼 때에 그는 이제 고기와 무교전병과 이제 국을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염소 새끼는 이제 속제와 번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 무교 전병은 이제 소제를 생각하게 되고요. 국은 이제 전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제 갈보리 십자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번제와 같이 자기를 드리셨으며 또 거룩하고 흠없는 생애를 사신 주님께서 전제로서 자기를 드리신 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반석에서 불이 나와서 그 모든 제물을 사르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제 갈보리 십자가에 의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주님을 이렇게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이 어떠신 분인지 아는 것은 이 갈보리 십자가로 돌아갈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떤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우리를 세상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어떤 희생을 드리셨는지를 알 때 우리는 이제 성장해 감을 보게 됩니다.
또 이제 마지막으로 20절에 이제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는 이제 표현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이제 연약한 믿음이 있고 그는 여러 번 표적을 구하지만 기드온이 또 다른 점은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후에도 27절에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니" 그것이 그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던 길이었습니다. 그는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주어지신 말씀에 따라갔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까 나왔듯이 이제 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밀을 타작함으로 얻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될 것은 그 작은 말씀에 순종해 가야 됩니다. 그때 그는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여기 이제 기드온이 예물을 드리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인데요.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이 사람이 실제로 이제 섬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면을 이제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예배가 먼저고 그다음에 이제 섬김을 하게 될 때에 그것이 이제 올바른 순서임을 이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어떤 면에서 이제 그렇게 되냐면, 우선 이것은 이제 17절에 기드온이 말한 것처럼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은혜를 받은 것이죠. 그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기드온는 이것을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이제 어떤 이제 자신에게 이제 확신을 주는 이제 표징을 이제 구하게 되는데요. 예배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기드온이 드리는 예물을 통해서, 그리고 그 예물이 이제 하나님께서 열납하시고 이제 그런 광경들을 통해서 이제 더욱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 이제 깨닫게 되고 여호와 살롬, 하나님께서 평강이심을 이제 깨닫게 되고 더 큰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예배하러 나올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이제 오히려 그 예배를 통해서 더욱 우리 마음에 이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에 대해서 기억하고, 우리 주님의 어떠하심과 그분의 행하신 일을 이제 우리가 입술로 찬양을 드렸을 때에 우리 마음은 더욱 큰 확신과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이제 그런 예물들을 이제 반석 위에 두고 이제 국을 쏟으라, 이렇게 쏟으라라고 돼 있는데 그래서 이 모양으로만 보면 사실 다 허비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실제로 세상은 이제 허비한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예배는 이제 하나님께서 이제 흠향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제 확신을 가져다주는 이 놀라운 특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이기범 형제님 : 저희가 이 부분을 통해서 하나의 결론을 잠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미디안이 이제 세상의 영향력이고, 그리고 분쟁과 다툼을 말한다면 24절을 통해서 저희는 기드온이 평화를 누림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하면서 여호와는 이제 평강이라고 해서 평화를 누리면 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분쟁과 다툼은 이제 평화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이렇게 형제님들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배가 있고요. 예배를 통해서 저희는 반석과 반석이 그리스도임을, 그리고 그 불이 심판임을 이렇게 저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저희가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렇게 하나님과 이렇게 화평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예배가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저희가 주님의 그 십자가를 기억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리고 또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모임 안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저희를 주장하게 하고 저희를 이렇게 한몸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미디안이라는 분쟁,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해결책은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서 평화를 누리는 것이라는 것을 저희가 짧게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앞전에 형제님 말씀하신 대로 이 부분을 보면 "주되시는 표징"과 '예배'가 이게 합쳐져 있습니다. 정말 당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주세요, 했는데 그 예배가 연랍되고 여기 보면 어떻게 되냐면 처음에 기드온이 그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드렸던 예배가 연랍되었을 때 그는 죽지 않고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가 됩니다. 정말 하나님은 저희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증명하시냐면, 정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정말 저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분의 희생을 통해서 저희와 화평을 맺는 것, 그것이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됩니다. 기드온도 그러한 면에서 이 예배가 연랍되고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 앞에 연랍되는 걸 통해서 하나님이 이런 분이다라는 것을 이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아까 이제 섬김 전에 이제 예배라고 이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제 이제 미디안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다툼을 이제 일으키는 자들인데 정말 모임 안에 화평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화평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또 화평한 관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부분을 통해서 그 기드인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지금 관계를 맺고 가는 것을 보게 되고 이 이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또 회복하는지를 또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시간이 거의 다 됐기 때문에 이제 마쳐야 되겠습니다.  하여간 이 부분은 이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찾아오신 거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이제 기드온에게 이것이 준비됐을 때 이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예수님은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화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가 있죠. 하나님과의 평화, 두 번째는 하나님이 가진 평화, 하나님은 평안하시죠. 어떤 경우도, 그 평안을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죠. 빌립보서 4장에, 그래서 하나님과 평안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하고, 그와 같은 것들이 은혜로 얻어지고, 하나님을 찾아오심으로 얻어지고, 그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자, 이제 이렇게 되고 나서 이제 그다음에 기드온이 여러 가지 일들을, ...이제 그다음 작업들은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주님께서 기드온과 또 그 당대의 이스라엘에게 이와 같이 주님이 친히 찾아가셔서 이와 같은 일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고, 저희들에게는 또 놀라운 은혜로, 이것보다 더한 은혜로 저희들을 찾아오셔서 비밀들을 알려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참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