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상 성경읽기(요약) 완료
< 성경읽기 : 열왕기상 1장 8-11절 >
박이레
2024. 5. 17. 22:58
2018년 8월 15일 수요일
< 성경읽기 : 열왕기상 1장 8-11절 >
8절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왕상1:8, 개역한글)
- 열왕기상에는 두명의 대제사장이 나온다. 사독과 아비아달이다. 아비아달은 사울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진멸할때, 에봇을 들고 다윗에게로 도망쳐 온 자세장이다. 그리고 사독은 사울 사후에 헤브론을 다스리던 다윗에게 나아온 제사장이다.
-> 아비아달은 사무엘상 초반부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은 엘리 제사장의 손자이다. 결국에는 그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9절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왕상1:9, 개역한글)
- 아도니야의 잔치를 베푸는것은 단순한 잔치가 아니라 제사를 지낸것으로 보인다. 압살롬도 사무엘하 15장 7절에서 반역을 하며 잔치를 베푸는데 이도 역시 제사를 가장한 잔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큰 잘못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않고 순종치 않고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한 것이다.
- 아도니야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나단은 사람들과 모의하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고 다윗왕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라 한다면, 자기들끼리 교제하고 기뻐하는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서로 세우는 교제를 하는 것이 진정한 교제라고 생각한다.
- 아도니야가 모의한 대상은 요압과 아비아달이다. 이는 왕의 허락없이,하나님이 제정한 가르침에 순종치 않고 자기들이 계약을 꾸미려는 것이다. 이들의 행적을 볼때 이들이 아도니야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후의 삶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이 가진 권력에 대한 욕심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은 독특한 것이다. 보통 모든 왕 앞에는 한명의 대제사장만이 있었다. 그러나 다윗 왕 앞에는 두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다. 기록에 보면 사독이 먼저 나오고 이후에 아비아달이 나왔다. 아비아달에게는 사독 앞에 서고 싶다는 정치적 야망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
- 이 지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에느로겔 -> 엔 로겔 : 우물이라는 뜻으로 첩자의 분수로 해석된다)
소헬렛은 매우 커다란 돌이다. 현대에도 이 지역은 휴양지의 명소로 불리운다. 이러한 곳에서 사람들을 모은 것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것으로 볼수 있다.
-> 현대에도 중요한 결정을 할때에 이사회에서는 회의실에서 결정하지 않고 제주도의 휴양지에 가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아도니야의 야망을 수월하게 이루기 위해 이렇게 장소를 잡은것으로 보인다.
-> 제사의 형식을 도입하면서 사람들에게 당위성을 주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보여주려 한것으로 보인다.
- 여기서 잡은것은 양과 살진 송아지이다. 이는 모두 제사에 사용된 것이다.
- 아도니야는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는 그래도 자기가 하는일에 대해서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제사의 형식을 띈 잔치를 베푼것으로 볼수 있다.
-> 그리고 이렇게 하면 자신의 의도를 모르는 자들에게 자신의 반역을 잘 숨길수 있었을 것이다.
10절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왕상1:10, 개역한글)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
- 아도니야는 이들이 자기 편으로 돌아서지 않을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또한 자기동생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음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도니야는 이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 그렇다고 아도니야의 초청에 나온 모든 이들이 아도니야의 뜻에 따랐는지는 알수없다. 왜냐하면 요압과 아비아달과 아도니야가 모의하여 사람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이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모였을 것이다.
- 솔로몬의 어린시절 이름은 '여디디야'이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자' 라는 뜻이다. 왕궁의 모든 사람들이 솔로몬이 다음 왕이 될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도니야도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솔로몬은 다윗의 10번째 아들이고 아도니야는 4번째 아들이다. 첫째와 둘째 셋째는 죽었고 사람의 생각으로 한다면 다윗 왕의 다음을 이을 자는 아도니야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생각을 하고 사는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 반대편에 가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안다고 할수 없지만, 최대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잘못을 알았을때 돌이키는것이 복된 가운데 있는 것이다.
- 초청을 받는다는것은 그 자리에 나올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초청되는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실하게 산다면 세상의 행사에 초청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리에 나올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기 떄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세상의 행사에 초청된다면 자신을 한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1절
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왕상1:11, 개역한글)
- (질문) 이전에 다윗왕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일로 나단은 다윗에게 나아가 그의 잘못을 바로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단은 밧세바를 먼저 다윗에게 보내어 말하게 하고 이후에 자신도 들어가 밧세바의 말을 도왔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
(답변)
- 세번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있다.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13절은 선지자 나단이, 17절에서는 밧세바가, 30절에는 다윗왕 본인이 이 말을 했다. 이는 권면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따라 밧세바에게 한 말을 다시한번 밧세바와 나단의 권면을 통해서 약속을 잊어버린 다윗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다.
- 우리는 우선 나단을 속임수를 쓰거나 계략을 쓰는 사람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는 바른말을 하는 몇 안되는 사람임을 알수 있다. 이 문제는 정말 중대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최 경영자에게 어떤 정책적인 변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작전을 잘 짜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옳은가 하는 문제를 제하고보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이 문제를 어떻게 관철할것인가이다.
-> 나단은 이 일을 가장 잘 관철할수 있는 사람을 밧세바로 보았다. 그녀는 왕비이며, 왕의 침실에 자유롭게 들어갈수 있는 자였으며, 솔로몬의 어미였다. 그리고 13절, 17절, 30절에 나오는 다윗이 밧세바에게 한 약속을 직접 들은자는 밧세바이다. 당사자 본인이 다윗에게 나아가 호소할때 다윗의 마음이 더 흔들리기 쉬웠을 것이다.
-> 계교라는 뜻은 우리말로 좋은 뜻으로 해석되지는 않지만, 이 부분은 '구원할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공한다.
이제 나로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 구원할 계교 베풀기를 허락하소서 (왕상1:12, 개역한글)
<솔로몬의 생명을 구원할 계교>
- 나단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베푸는 계교는 솔로몬과 밧세바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을 사람이 하는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것에는 여러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당장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기다려주고 기도해 줄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대상22:9,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