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성도 말씀

솔로몬의 받은 지혜, 은사

박이레 2024. 5. 3. 17:46

< 솔로몬의 받은 지혜, 은사 > 강성찬 형제님

열왕기상 3장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성에 두고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이 필역되기를 기다리니라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 나의 해산한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그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 아들이 죽으니 저가 밤중에 일어나서 계집종 나의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다른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또 가로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왕상 3:1-28).

하나님께서 읽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기 솔로몬에 대해서 이 기록을 보게 되는데요. 이 솔로몬은 성경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알고 있을 만큼 이제 유명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어떤 면에서 유명하냐면 이제 그의 지혜로 유명합니다. 이 솔로몬은 많은 지혜를 하나님께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 어떻게 해서 그 지혜를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그 지혜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가 여기 열왕기상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제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올랐고, 그리고 많은 책임을 받은 것을 이 앞장에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3장 이후에는 이제 그 책임을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그 나라의 영토를 확장하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것들이 이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책임을, 그 무거운 책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이제 그 왕 솔로몬에게 어떤 능력을 주시는지가 여기 이제 3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첫 번째 하나님의 원리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 때에 그에 필요한 능력도 같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맡기시고 그에 필요한 능력도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기 보면 이제 3장 8절에 이 솔로몬은 이제 이렇게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요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이제 솔로몬은 이제 자신이 받은 책임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백성은 수요가 많다, 셀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이 능력을 그다음 장 4장 29절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왕상 4:2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데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백성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가 많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와 충명도 힘이 많이 주시는데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정말 솔로몬에게 맡기신 그 책임만큼 많은 지혜와 충명을, 그 능력을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솔로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지역 교회 안에 우리를 두시고,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그 책임에 맞는 능력도 우리에게 정확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솔로몬을 통해서 보듯이 정말 딱 그 책임에 맞는 그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적으로 생각하기에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너무나 커 보이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너무나 적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솔로몬의 기록을 보게 될 때에 우리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솔로몬처럼 우리 책임에 맞는 능력을 주셨을 것을 믿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인 것이죠.

우리는 사사기에 이제 삼손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됩니다. 왜 제가 삼손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을 하냐면, 여기 이제 솔로몬하고 이름이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마는 둘 다 이제 'ㅅ'으로 시작이 되죠. 그런데 이제 또 비슷한 것은 삼손도 많은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삼손처럼 그 놀라운 능력을 받은 사람이 또 성경에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삼손도 굉장히 놀라운 능력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삼손만큼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삼손이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능력을 다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삼손처럼 장래가 촉망된, 정말 가능성이 있는, 그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내용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 삼순을 볼 때마다 저는 우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삼손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능력을 주시는 데 인색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삼손의 스토리를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삼손이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하도록, 어떻게 해서든지 삼손이 그 능력을 쓰도록,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그를 돌이키고자 애쓰시는 게 느껴집니다. 삼손은 사실 거의 깽판을 치고 있는데, 저 같았으면 진작에 그 능력을 다 회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또 참으십니다. 그 능력을 사용하도록 계속 그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봤을 때에 저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고 계시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풍성히 부어주시고, 그것을 우리가 잘 사용하도록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도 모두 구원받을 때에 은사를 모두 받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신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사람의 분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라고 에베소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이제 은혜를 은사를 그 능력을 부어주셨는데,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가 죽고 나서 하늘나라에 갔을 때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내가 이 정도였어? 내가 이렇게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네.' 내가 가진 재산이 천억인데 한 100만 원 쓰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도 하늘나라 가보면 '아니, 내가 가진 능력이 이 정도였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이 나에게 은사를 부어주셨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겨우 요만큼 사용했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솔로몬을 통해서 첫 번째 기억해야 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솔로몬에게 그 많은 수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모래와 같은 많은 지혜를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그 일을 할 수 있는,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무엇을 구하느냐?"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이제 솔로몬은 이제 그것에 대해서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볼 때에 이것은 많이 좀 들은 어떤 이야기랑 비슷한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야기냐면 호리병에서 나온 지니 이야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호리병에서 도깨비가 나와서 원하는 세 가지 소원을 말해봐라. 내가 다 들어주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그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것은, 그 호리병에서 나온 도깨비가 "원하는 대로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너의 소원을 말해봐." 이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면 솔로몬이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였을 때, 여기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냐면 10절에,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답이 있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냥 아무거나 구해봐, 내가 다 들어줄게가 아니라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했을 때 이것은 정답이 있는 그 질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상 테스트입니다. 솔로몬에게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야, 네가 원하는 거 아무거나 말해봐. 내가 다 들어줄게." 이렇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신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안 하냐면 그렇게 하면 사람이 망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다 들어줄게." 하면 그 사람은 금방 망해버립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 망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그게 실제적인 예로 사사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사사기에 실제로 일어난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거리낌 없이, 아무런 상관없이 삽니다.
그리고 금방 망해버립니다. 이상한 짓을 하면서 망합니다. 이제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정말 사람을 위하기 때문에 정말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제 솔로몬에게 이 테스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니 하나님이 일을 맡기셨고, 그 필요한 일에 그 일에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아니 그냥 주시면, 딱 그냥 테스트하지 마시고 바로 그냥 능력을 딱 주시면 좋을 텐데 왜 테스트를 하시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제 첫 번째 이유는 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해보라, 나한테 구하라라고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 능력이 하나님의 것임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가 이 능력이 너의 것이 아니고 이건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딱 받으면 이거 이제부터 이건 내 거야. 내 마음대로 쓰는 내 돈, 내 능력,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때에 알게 하시는 것이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잠깐 베드로전서 한번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여기서 이제 은사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은사를 이제 받은 사람을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은 '청지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청지기라는 것이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주인은 따로 있고, 주인이 어떤 큰 돈을 관리인한테 맡긴 것입니다. 이것을 잘 사용해 주십시오. 내 뜻을 위해서 잘 사용해 주십시오, 라고 맡긴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이제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뭘 맡았냐면 이제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이 받은 능력에 대해서, 그 은사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솔로몬처럼 직접 나타나셔서 "네가 뭘 원하니? 뭘 구하는지 말해봐라." 이렇게 직접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이 능력을 이제 주신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 그 은사를 사용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고, 청지기로서 이것을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는지 그 뜻을 묻고, 계속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을 구하고, 정말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실제로 그런 것처럼 그 힘을 구한 것처럼, 우리는 이미 그 능력을 받았지만 항상 은사를 사용할 때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이것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고 구하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이제 삼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삼손이 실패한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그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그 힘, 그는 맨손으로 사자를 죽일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죠. 아마도 삼손의 실제 모습이 많은 이제 성경학자들이 말하기를 저처럼 체구가 작은 사람이었을 거라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락부락한 사람이 아니라, 근육맨이 아니라 이제 저처럼 힘 없어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가 맨손으로 사자를 죽이는 겁니다. 그리고 그가 그냥 나귀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을 천 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딱 보면 그 사람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신은 그걸 모릅니다. 그러니까 삼손은 그 힘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그는 조심성이 없습니다. '내 건데, 뭐.' 내 마음대로 이거 가지고 이제 블레셋 사람들한테 괜히 장난 걸고, 심지어 그는 자신의 머리가 깎인다 해도 그 힘이 있을 걸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는 그것을 말을 안 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말합니다. 삼손의 그 힘은 그 성별된, 하나님께 구별된, 하나님께 의지한, 그 나실인이 머리를 긴 것처럼 정말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기에 그 힘이 달려 있는 건데, 삼손은 점점 자기가 계속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고 쓸 수 있으니까, 이건 내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머리가 짧아도, 그 나실인의 표가 없어도 그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는 조심성 없이 말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잘러." 이렇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머리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할 때 그 힘이 돌아오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나실인의 표가 있을 때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그 표가 있을 때에, 그 힘이 다시 생기기 시작하도록 하십니다. 삼손에게 다시 한 번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의 힘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의지할 때 생기는 힘이다. 계속해서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삼손이 하나님께 "구했다"라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삼손이 언제 하나님께 구하냐면, 잠깐 사사기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삿 15:18).

그때 이제 삼손의 생애 가운데서 이제 한 번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목말랐을 때, 이제 죽겠구나 했을 때, 그가 한 번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물을 내어 그를 마시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이것을 통해서 교훈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이제 자신의 힘을 ,사실 자신의 주먹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죽을 때에 한 번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삿 16:28).

안타깝게도 그가 두 번째 구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구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것을 마지막으로 힘을 내고 이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구해야 됩니다. 우리의 능력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청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제 이렇게 "구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이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제 우리가 이제 어떻게 구해야 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은사를 사용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이제 열왕기상 3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선 이제 첫 번째로 솔로몬은 3장 6절에 보면은 "모든 것이 이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왕상 3:6).

이제 우리말 성경에는 이 순서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였다"가 이제 먼저 나와 있어서 이제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다." 이렇게 이해가 되기 쉽게 되어 있는데요. 사실 이 이제 번역에 따라서 "주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를 왕으로 삼으시는 은혜를 베푸셨고,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솔로몬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 다윗이 그 왕의 자리에 앉아서 그가 성실하게, 정직하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 아버지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올라간 것은 역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사에 대해서 제일 첫 번째로 생각해야 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베풀어주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은사에 대해서 에베소서에서, 또한 고린도전서에서, 또한 로마서에서 기록된 곳을 찾아볼 때마다 항상 이것이 은혜를 따라 또한 은사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첫 번째로 기억을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그 능력을 사용할 때에, 솔로몬은 이제 이것을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그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앉으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도 그 주권적인 뜻에 따라서 그의 뜻대로 우리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은사를 보고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저 은사를 받았더라면'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나에게 이 은사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고, 이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정말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다면, 이제 어떠한 희생과 부러움과 또한 자신에 대해서 나는 이게 뭐지라고 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8절에 보면, 우리가 앞에서 읽었습니다마는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8-9).

두 번째로 솔로몬이 이야기한 것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책임을 맡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사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할 때에, 또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하나님께 맡았는가를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실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주셨는지 내가 잘 모르겠어요라고 얘기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일을 맡기신 거지, 나에게 무슨 일을, 내가 무슨 일을 하길래 하나님이 바라시는 걸까? 어려워하는 부분이 이제 그 부분입니다. 솔로몬은 아주 명확하죠. 이스라엘 나라를 맡기셨잖아요. 성전을 짓는 것을 맡기셨잖아요. 나도 그런 일, 이게 딱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면은 속이 시원할 텐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첫 번째 재판을 보면은 약간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읽었습니다만 16절에 보면 이제 그때에 이제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나아와서 그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솔로몬이 하게 된 아마도 첫 번째 재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그 때에"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재판이 뭐냐면 이 창녀 두 명의 송사를 재판하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가장 가치 없는 사람들이 이 창녀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아들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제 아마도 누가 아버지인지도 모르는 이제 그런 아이들이죠. 이제 그런 아이들에 관련된 것, 그 사회에서 관심 없어 하는 그런 일을 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받았다면 그가 해야 되는 첫 번째 일은 아주 엄청난 재판일 것 같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지금 이제 매일 뉴스에 나오고 있는 것이 이제 이스라엘하고 이란이 지금 이제 큰 전쟁 국면 가운데 접어들었다라고 이 뉴스에 나오고 있죠. 매일 미사일 서로를 향해서 쏘고 있고, 그런 일, 그런 심각한 일, 그런 일을 이제 솔로몬이 나와서 이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합시다, 해서 해결하고, 그 지혜를 이제 그런 데 이제 사용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런 일이 여기 딱 기록이 돼야 될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나와서 엄청난 그 갈등을 어려운 갈등을 해결해내는 그런 일이 여기 기록돼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그 일이 해결된 것이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자꾸 크고 놀라운 일, 사람들이 '와, 저런 것을 하다니' 그런 일을 자꾸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사실은 바로 내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작은 일, 그냥 일상적인 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제 그런 일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그런 사소한 일들, 이제 그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이 가정 안에서, 또한 직장과 학교에서 내가 지금 자질구레하게 하고 있는 일, 그런 것들이 하나님이 맡기신 것인데,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먼 데 있는 일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이 뭐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일이 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백성들, 그 백성들 하나하나 그들의 일을 살피고 그들을 재판하는 것, 그는 사실 이 구하는 것 전에도 그 재판하는 것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그것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걸 구한 것입니다. 이 재판하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종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제 잠언 말씀을 한 군데 볼 텐데요. 이 잠언 솔로몬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잠언 18장 17절입니다.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잠 18:17).

제가 왜 이것을 이제 자주 들었냐면, 이제 실제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어떤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들 간에, 또는 성도들 간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이제 그 당사자 중에 한 분이 와서 이런 일이 있었어. 너무 억울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왜 어떻게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할 수가 있냐, 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을 들을 때에 공감이 됩니다. 아유, 진짜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 저 사람 나쁜 놈,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상대방이 와가지고 그 일을 또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그 일을 들어보니까, 그것도 맞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제 그럴 때마다 이제 이런 말씀을 생각하게 되죠.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또 다른 사람이 또 더 세세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솔로몬이 기록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솔로몬이 이 송사를 해보니까 이런 것입니다. 이 사람 말을 들을 때는 이 사람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이 맞는 것 같고, 그런 것입니다. 이 재판이 어려운 것을 알고 솔로몬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그 재판하는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미 자기 주위에서 나에게 맡겨진 일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 일 가운데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 어려움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했던 것입니다. 일을 해본 사람이 뭘 구해야 되는지 압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주위에 맡겨진 일들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제대로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정답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윗의 경우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솔로몬의 부친 이 다윗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젊었을 때에 이제 블레셋 사람 거인 골리앗이 쳐들어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오고 골리앗을 앞세워서 와서 골리앗이 이제 막 욕을 합니다. 모욕하고 "이스라엘 누가 나랑 싸우겠느냐?" 아무도 못 나갑니다. 골리앗이 너무나 큰 거인이었기 때문에 무서워서 아무도 못 나갑니다. 그때 다윗이 그 믿음으로 이제 자기가 싸우겠다고 나갑니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다윗의 형 엘리압이 17장 2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삼상 17:28).

다윗은 그때 양을 치는 목동이었고, 아니 목동이 무슨 골리앗과 싸운다고 그래? 들에 있는 양을 어디에다 놔두고 와가지고 지금 싸운다고 하는 거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다윗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삼상 17:34).

여기서 주목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윗의 형은 다윗에게 '들에 있는 몇 양을 어디다 두고 왔냐'라고 이제 하찮게 말을 합니다. 그냥 들에 있는 몇 마리의 양을 어디다 두고 왔느냐? 하지만 다윗은 그 몇 마리의 양을 하찮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비의 양"이라고 말합니다. 내 아버지의 양,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지키라고 맡긴 양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관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의 형은 그냥 양 몇 마리 치는 거였지만 다윗은 이것은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아버지의 소중한 양이라고 말을 합니다. 솔로몬도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기라고 할지라도, 그들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나에게 맡기신 백성이라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혜를 달라고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도 지역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의 양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무리, 이 지역교회 은사로 섬겨야 되는 대상이 하나님의 양무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하나님의 양, 우리가 우리가 섬겨야 되는 대상이 하나님의 소유물인지를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정말로 솔로몬처럼 올바르게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그 대답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들의 말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다시 이제 11개 상 3장으로 돌아가서 16절부터 나와 있는 그 재판의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도 창기의 말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뭐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해야 돼?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말도 아닌데, 이 솔로몬이 구할 때에 이제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라고 구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그 지혜로운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다른 부분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인데,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듣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귀로 듣는, 솔로몬은 잘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겁니다. 문자적으로, 그래서 솔로몬은 잘 듣습니다. 이 창기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듣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이 그냥 하찮은, 말도 잘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리고 보면 23절에 그들이 한 말을 반복해서, 자기가 잘못 들었을까 봐 반복해서 너는 이렇게 말하고 산 것은 내 아들이고 죽은 것은 내 아들이라 말하고 저는 이렇게 말하였구나라고 반복해서 말해줍니다. 요약해서, 잘 듣고 요약하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귀하게 여기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게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할 때에 동일하게 필요한 그러한 듣는 마음입니다.

사실 이제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는데요. 이 지혜가 솔로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인 솔로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지혜는 모든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섬기는 은사에 있어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섬기는 은사에 있어서는 그냥 너그러운 마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뭐가 필요한지, 정말 이 사람에게 뭐가 문제인지, 그 마음을 잘 듣고 지혜롭게 섬겨주는 그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이 은사에 있어서 지혜는 기본입니다. 상대방을 잘 들어주는 지혜로운 마음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시간상 이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제 구약 성경에서 잘 섬긴 사람으로 이제 수넴 여인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잘 섬긴 사람, 그래서 성경에서는 특별히 그 여인에게 대해서 "귀한 여인"이라는 굉장히 귀한 표현을 그에게 쓰고 있습니다. 이제 그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시원한 다락을 마련해 주고, 근데 꼭 큰 다락이 아닙니다. 작은 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만 딱 준비를 해놓습니다. 침대, 책상, 화려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선지자에게 필요한 것을 지혜롭게 파악하고 그것을 공급하는 지혜로운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있어서도 이 지혜가 필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이제 은사를 하나님께 받아서 사용을 할 때에 이것은 이제 하나님의 은사이기에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냥 내가 그냥 알아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배들이 또한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그 섬김의 본을 보인 사람들, 그 은사를 가지고 다른 분들을 섬겼던 선배들을 이제 보게 됩니다. 솔로몬에게 있어서도 그런 선배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재판에 대해서 아주 지혜롭게 재판을 내립니다. 지금 살아있는, 남아있는, 그 한 아이를 칼로 나눠라. 그래서 반씩 주라라고 합니다. 굉장히 이상한 판결이었지만, 이제 그게 정말 누가 그 아이의 어머니인지를 드러냅니다. 가짜 어머니는 "아 그래, 그냥 반씩 나눠갖자." 이렇게 합니다. "그게 공평하잖아." 그런데 정말 어머니는 자기가 그 아이를 자기 품에 앉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아, 그럼 저 여자한테 주십시요."라고 합니다. 자기가 어머니인데도 반 나누지 말고 저 사람이 어머니가 맞으니까, 저 사람한테 주십시요. 그 아이를 살려서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그 어머니가 누군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보게 될 때에 이제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 기억이 나죠?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 다윗입니다. 사무엘하 19장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이 이제 반역으로 쫓겨나서 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돌아오게 될 때에, 다윗이 어려웠을 때는 모른 척하던 사람들이 이제 다윗이 권력을 회복하고 돌아오니까 또 그 앞에 나와가지고 이제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보기에는 누가 정말 다윗을 충성되게 기다렸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냥 다윗이 망했을 때는 모른 척하고, 아니면 다윗이 이제 권력을 회복했으니까 다윗에게 또 붙어가지고 환영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거기에 이제 다윗을 맞으러 온 사람 중에 므비보셋이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여가지고 다윗이 도망갈 때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왜 내가 어려울 때는 네가 함께하지 못했냐?"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래서 이제 므비보셋이 어떻게 대답하냐면은 제가 속아가지고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 발이 불구여서 저 스스로는 갈 수가 없는데 제 종이 저를 속이고 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왕이 돌아왔으니까, 왕의 처분대로 하십시요. 왕이 어떻게 생각하시든지 저에게 왕의 처분대로 하십시요."라고 합니다. 그때 이제 다윗이 19장 2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19:29-30).


다윗도 "그러면 이제 네 재산을 이제 너의 종 시바하고" 시바는 앞에서 이제 다윗에게 환영하는 인사를 한 사람입니다. "그 시바하고 반을 나누라." 시바 반 가지고 너도 반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은 다 필요 없다고 합니다. 왕이 돌아왔으니까 그런 것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시바에게 다 가지게 하십시오. 자기를 속인 시바가 그걸 다 가지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왕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누가 정말 충성된 자인지를 드러냅니다. 다윗이 그 밭을 나누라고 했을 때에 누가 정말 왕에게 충성된 자인지를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또한 선배에게 받은 배운 그 지혜를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사용할 때에 우리의 앞선 믿음의 선배들의 행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와 또한 실질적인 경험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을 배워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에 대해서 솔로몬을 통해서 이렇게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맡기신 일에 필요한 은사를 풍성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은사에 대해서 청지기로서 항상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맡긴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어떤 크고 놀라운 일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나에게 지금 맡겨진 사소한 일들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우리는 어떤 힘이 필요한지를 보다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지혜가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더욱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실제적으로 사용함에 있어서 또한 선배들의 행한 그 경험들을 보고 배우고 그것을 따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셨구나.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욱 그 일에 충성되게, 또한 이 솔로몬이 비천한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 듣고 행한 것처럼 그와 같이 지혜롭게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제 은사 사용이 이 대전 중구 모임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참으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