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인생의 덧 없음과 구원이 필요한 이유
< 복음 : 인생의 덧 없음과 구원이 필요한 이유 > 24년 3월 10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1:12-18, 개역한글)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한 말입니다. 그가 많은 지혜를 구했지만 그것이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세상에서 세상 지식을 더하면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지식을 더하면 근심을 더할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1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12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전9:11-12, 개역한글)
모든 시기와 우연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생각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다은 사람보다 열심히 달려가면 많은것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그 생각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제가 역촌모임에서 이명인 형제님 옆자리에 앉았는데요. 이명인 형제님께서 화원을 하십니다. 작은 식물을 재배해서 도매상에게 넘긴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시는데, 아버지가 예전에 2만평의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땅의 주인이 그 땅을 사라고 했는데 그것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땅이 개발되어 엄청나게 가격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면 과거에 내가 어떻게 했으면 어떻게 했을텐데라고 안타까워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시기와 상황을 결정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전9:12, 개역한글)
동물들이 올무에 걸려서 죽게 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젊은 나이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가 누구보다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앙의 날을 준비하신다면 그에게 어느날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두 정해 놓으셨다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두신 위치가 다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인내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원래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개역한글)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3,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인생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셨을 시점에 완전하게 창조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3:8, 개역한글)
"피하여"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그들이 범죄하자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것입니다.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9-10, 개역한글)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뱀의 미혹을 받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장려합니다. 그것이 인생이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것처럼 제시하지만, 성경은 이것을 아주 큰 죄악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9:12-13, 개역한글)
이와같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낮을 피하고 두려워하고 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개역한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기 위해서는 그 가죽을 가진 동물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죄인이고 죄를 학습하지 않았음에도 기가막히게 죄를 잘 범합니다. 어떤 아이에게 어떤 것이 죄인지, 그것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어린아이들이 알아서 잘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교묘해집니다. 저희가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이 복음의 말씀을 우리가 매주 듣습니다. 이 시간이 끝나면 점심을 먹는 시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시면 이 은혜의 시간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염두해두시기 바랍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와같은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5, 개역한글)
보시면 왜 멀쩡한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까? 왜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왜 부자에게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지요? 이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만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이와같이 문제가 있는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내가 귀머거리이고, 소경이고, 문둥병자고, 가난한 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시작은 내가 영적으로 얼마나 가난한 자인지, 내가 영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 자인지 아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다는 것을 깨달은 자가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둠을 좋아하는 자는 불을 키지 않습니다.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3:10-18, 개역한글)
이와같은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고싶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는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병 가운데 놓인 자가 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병든자를 고치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의원이십니다. 이와같이 심각한 영적인 병 가운데 놓인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나단에게 므비보셋이라는 절뚝발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왕의 손자입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요나단을 인하여 마땅히 죽여야 하는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요나단과의 약속에 근거로 해서 므비보셋을 왕의 상에서 같이 식사하게 합니다.
이는 구원받은 사람이 받는 은혜에 대해서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신분적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근거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미미할 수 있지만 점차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믿음은 큰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린 말씀을 믿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성장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 말씀하셨을 때에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런 연약한 믿음을 가졌던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리는 믿음에까지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 가운데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