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주님께 시선을 두라 / 강성찬bro

박이레 2024. 3. 5. 20:17

덕언 : 주님께 시선을 두라 / 강성찬 형제님

마가복음 2장입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 2:18-20).

여기 이제 어떤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고 있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이제 주님께서는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하지 않는다."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잔치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신랑을 빼앗길 날에 이르리니 그날에 금식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잔치를 하고 이제 주님을 빼앗겼을 때 그때 이제 금식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배우게 되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이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이제 어디 계시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이 순간에, 어디에 계시는가? 이게 이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따라서 이제 우리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냥 주님과 상관없이 이제 금식하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잔치를 하고 주님을 빼앗겼을 때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관련해서 또 다른 한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입니다.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4-26).

여기서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을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 그가 다시 살 것을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의 말을 정정해 주십니다.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가 중요한 것이다. 바로 내가 부활이고 내가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하리니 이것을 내가 믿느냐? 마르다는 마지막 날이 오면은 다 부활하는 것을 이야기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냥 부활이라는 것이 어떤 날이 돼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근거해서, 주님 때문에, 부활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제 주님이 이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고 모임 생활을 하는 것은 항상 주님이 가장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주님과 상관없이, 주님이 그 가운데 계시는데 금식하고, 또 주님이 빼앗겼는데 잔치를 벌이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시선을 두고 주님이 어디 계시느냐에 따라서, 주님께서 지금 어떻게 하시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해야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운명이 공동하게 묶여 있는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포교회에서 이제 요한계시록을 성경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전 중구 모임에서도 요한계시록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요. 요한계시록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여러 가지 일들이 모두 주님과 관련돼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먼저 주님께서 어디 계시고, 어떤 모습인지를 말씀을 해 주신 다음에, 이제 그다음에 사건들이 전개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모든 일에 주님이 그 중심인 것을 이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가서 제 5장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계 5:6).

여기 이제 4장 5장부터는 주님께서 온 우주의 주인으로서 심판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지금 이제 보좌에 계시는 것이 언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어떤 모습인지를 말씀을 하신 후에 이제 우리들도 그에 맞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9절부터 이제 우리들이 그 가운데서 하고 있는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참 우리 주님께서 그 왕의 권리를 가지시고 이제 그 권리를 보좌에서 행사하실 때에 이제 우리도 그 주님을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언급을 하고 있냐면, "저희도 이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라고 특별히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9장에 가보면 주님께서 이제 심판자로 오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5장에서는 주님께서 보좌의 왕으로서 계시는 것을 말씀을 하셨으며, 19장에서는 심판자로서 19장 11절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주님께서 여기서는 백마를 타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제 싸우고 이기려고 이 땅에 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모습 뒤에 우리의 모습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4).

이제 성도들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이제 그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이 땅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5장과 19장에 주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요. 이것은 이제 장차 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제 관심 있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지금 현재 주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또한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이제 요한계시록 1장으로 와서 이제 보도록 하겠습니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2-19).

여기서는 우리 주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사도 요한이 그 음성을 들을 때에 이제 몸을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이제 그때 그 방향으로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때로 우리가 지금 우리의 주님의 모습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주님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그게 우리에게 이제 가장 중요한 모습인데, 우리가 혹시 이 주님께서 지금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우리가 종종 그 시야에서 주님을 놓칠 때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여기서는 일곱 금 촛대 사이에서 일하고 계시는 모습으로 나와 있습니다. 마치 그 성막 안에서 그 등잔에 불이 밝게 빛나도록 그 등잔을 계속 간수하고 계시는, 그 제사장의 일을 하고 계시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주님의 모습을 닮아야 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 땅에 있는 지역교회에 관심을 두시고 그 지역교회가 간증을 밝게 빛나도록 일하고 계시는 모습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지역교회의 간증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불빛이 밝게 빛나도록 하는데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곳으로 몸을 돌이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에 특별히 심판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분은 분명히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으시는 제사장이시지만 또한 그 교회들을 살피시고 그리고 책망하시는 심판자로서 나와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이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죽은 자 같이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의 행위를 아시고,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분입니다. 참으로 이분 앞에서 참 우리가 그 발 앞에 죽은 자 같이 엎드려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손을 얹으시고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우리가 그러한 주님을 바라보고 그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우리의 가장 큰 관심으로 두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분의 따뜻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랑도 우리에게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여기 대전 중구 모임 성도님들, 그리고 또 제 자신도 참 이 주님의 계속 시선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또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나도 거기에 동일하게 마음을 쏟기를 원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항상 그렇듯이 주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