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미분류(요약)

세 종류의 평강, 참 평강의 근원(요약)

박이레 2024. 2. 18. 14:01

< 세 종류의 평강, 참 평강의 근원 > 24.2.18. 일요일(요약2) / 강성찬 형제님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살전5:1-28, 개역한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평안(평강)"이라는 단어가 3번 나옵니다. 3절, 13절, 23절입니다.  
첫번째 나온 평안(3절)은 거짓된 평안입니다. 사실은 위험한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평안(화목)은 지역교회 안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세상은 거짓된 평안을 말하고 속아서 있지만 지역교회 안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세번째는 "평강의 하나님이" 그 평강의 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세가지 평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거짓된 평안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어올림을 받는 휴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 땅에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그 믿음을 거절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날입니다. 그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은 이 심판을 앞두고도 그 심판이 있을줄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심판이 없다고 말합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눈으로 보기에 그 심판의 징조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심판의 직전에 거짓된 평안이 있을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주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서 조약을 맺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 땅에 전쟁이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이 심판이 도적처럼 임할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적은 언제 그 집에 올지를 예고하고 오지 않습니다. 가장 평화롭다 여길때에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여러분이 예상치 못한 때에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입니다. 그 심판의 때에 여러분이 이 땅에 남아있다면 결코 그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두가지 특징입니다.

그런데 여기 다른 한 무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4절) 그들은 어두움에 있지 않습니다. 또 그들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이고 주의날이 임하기 전에 그들은 먼저 하늘로 올리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자들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2. 심판이 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 심판을 받을 자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그 심판이 임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희는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약간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심판이 임하지 않을것인데 항상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 심판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주의 날, 그 노하심에 이르지 않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가 깨어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10절)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흘러가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그 목적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든지 죽든지..자기와 함께 살게하려 하셨느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5:10, 개역한글)

그리고 이러한 말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해야되는 것은 이를 알고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이 땅 가운데서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심판을 받지 않는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므로,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 사람입니다. 아들이라는 말은 그 아버지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구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많이 봅니다. 사도요한이 급한 성격을 많이 가졌기에 주님께서 '우뢰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붙이셨습니다. 우리가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라는 것은 우리와 우리 아버지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 아니라면 이 주의날을 피하는 방법은 구원받고 그 존재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 외에는 그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빛의 아들은 낮게 속하였으므로 근심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흉배와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있습니다. 흉배는 마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흉배는 특별히 의로운 것입니다. 이 의의 흉배는 믿음과 사랑의 흉배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하신 그 칭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흉배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행동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말합니다. 마음은 죄를 범할때에 망가집니다. 그리고 머리는 소망이 없을 때에 망가집니다. 머리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데 머리가 망가지는 때는 꽉 막혔을때, 더이상 피할 방법, 소망이 없을 때에 망가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십니다. 영원토록, 점점 더 큰 복을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고 실망하지 않는 복이 하나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 구원의 소망이 우리의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거짓된 평안을 말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지역모임 안에서의 평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역모임 안에서 우리가 평안을 누립니다. 그런데 지역모임 안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살전5:14, 개역한글)

이 지역모임 안에 규모없는 자들, 마음이 약한 자들, 힘이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화목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가 언제 처음 언급되어 있는지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개역한글)

여기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처음 언급된 곳입니다. 여기서는 주님께서 주님 자신이 세우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직접 세우시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없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런데 두번째 교회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18:17, 개역한글)

두번째 교회에는 다른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18:15-17, 개역한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개역한글)

우리는 지역교회에 대해서 언급할 때 중요하게 다뤄지는 20절 말씀을 보게 됩니다. 지역교회 가운데 그들의 수가 소수일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지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맥적으로 죄가 다뤄지는 곳에서 지역교회가 언급됩니다. 그 죄를 다루는 존재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교회는 사람들이 세우고 그 안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문제가 합당한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인곳에 항상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지역교회의 차이점은,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법대로 처리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처리될 때에 그 모임은 계속 유지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문제가 없지만 이 지역의 교회들은 모든 성도들이 합심해서 모임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합당하게 처리한다는 것에 지역모임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살전5:14, 개역한글)

15절에는 이 세상의 방법들이 나와 있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는" 어떤 사람들의 무리 가운데 악이 발생하면 그가 한 만큼 그대로 갚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모임의 해결 방법입니다. 그러나 지역모임은 선을 좇는 것입니다. 항상 선을 좇습니다. 이것은 악을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악이 일어났을때 그것을 봐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선을 좇는다는 것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선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교회를 위해서 인도자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다스리고 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12절) 그들이 바로 다스릴때 지역교회가 안전하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자들은 세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1.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치고 피곤해서 땀을 흘리도록 일하는 것입니다.
2. 다스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원어적으로 살필때에 이 뜻은 앞에서 이끈다는 것입니다. 본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의 모습입니다. 모임의 인도자들을 영어로 리더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이끄냐면 본으로 자신의 삶을 통해서 이끄는 것입니다.
3. 권하는 것입니다. 권하는 것은 말로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말로 어떤 것이 옳은지를 그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하면 가이드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것이 올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인도자는 수고하여 피곤하여 지킬때까지 본을 보이며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 어떤것이 옳은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모임이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도자의 역할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양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사도가 양들에게 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1. "너희가 알고"(12절) 누가 인도자인지를 알아주는 것입니다.
2. "귀히 여기며"(13절) 그들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임의 인도자들을 통해서 여러가지 것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시선을 둬야 하는것은 우리가 얼마나 모임의 인도를 위해서 어떤 역사하고 있는지 시선을 둬야 합니다. 나에게 잘해주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이 모임을 위해서 그들이 어떤 수고를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3. 우리기리 화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좋은 관계를 누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포모임이, 대전 중구 모임이 이러한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임 안에 규모없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항상 있습니다. 규묘없다는 것은 질서가 없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행진을 하고 있는데 자꾸 다른 발걸음을 내는 사람입니다. 행렬에서 이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권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앞서 권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들이 어떤것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가르치고 권계하는 것입니다.
또 마음이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뒤에 나와있는 힘이 없는 자들과 경계되는 자들입니다. 힘이 없는 자들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연약하여 힘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지대가 되어줘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자일수 있으나 낙심할만한 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임 가운데 이러한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인도자들도 양들도 이러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16-22절까지는 7개의 짧은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현재형으로 명령형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많은 군사적인 용어를 씁니다. 앞서 깨어있는 보초병을 보았고, 여러 무구들을 장착하고 있는 군인을 보았습니다. 이후 부대를 이끄는 인도자들, 부대장을 봅니다. 그리고 행렬을 이탈해 있는 이탈자들을 봅니다. 그리고 16절에는 군인들에게 보내는 짧은 명령들을 봅니다. 이것은 믿음의 행진에 있어서 주님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개역한글)

이 앞의 세가지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이와 반대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불만을 표한다면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실제적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악한 일이 일어났을때 그 악한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악한 일이 일어났을때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말 자체가 어디 앞에 나아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쉬지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쉬지말고" 중간에 끊지말고, 휴식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매 삶에서 항상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을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것을 의도적으로 멈출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할때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19-22, 개역한글)

이 4가지는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귀하에 대해야 합니다. 그 예언을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성령께서 사용하셔서 우리 마음속에 뜨겁게 역사할 때가 있습니다. 그 역사를 우리가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가 바로 순종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것은 그 성령을 꺼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서 뜨겁게 역사할 때 우리는 그 인도 가운데서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5:21, 개역한글)

"헤아려" 이것은 검사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품인지 분별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이렇게 분별해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2, 개역한글)

어떤 좋은 모양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도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모양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악을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5:23, 개역한글)

그 모든 평강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에 온전한 평강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영과 혼과 몸이 흠없게 보존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실 것을 생각할 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강에 속지않고 지역모임 안에 여러가지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온전히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