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실패와 회복, 믿음
< 아브라함의 실패와 회복, 믿음 > 24년 1월 7일 일요일(요약2) / 전의석 형제님
한해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가장 교훈이 되는 사람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가장 많은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가장 큰 믿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렇게 행하게 된 것에는 그가 하루 아침에 행하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들을 통과하는 가운데 여러가지 실패를 경험삼아 자기 아들을 드리는데까지 갈수 있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11:31-32, 개역한글)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12:1-20, 개역한글)
11장 31절을 읽은것은 하나님께서 갈대아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갈 것을 명하셨고, 또 하란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거하였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대아우르에서 하란까지는 한 800km정도 됩니다. 부산에서 신의주 정도의 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으로 갈것을 말씀하시고 갈대아우르를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루를 떠났지만 가나안 땅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떠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때에 세상의 것에서 결별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데라와 함께하고 강 저펀에 거했습니다. 그 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야 하며 그곳에 가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12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갈대아우르는 이 당시에 가장 발전되고 문명화된 땅이었습니다. 누구나 이러한 곳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만든 이러한 편리한 땅을 떠나라고 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을 저기 먼 시골로 가라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2절 말씀에는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될지니" 세상을 떠나면 세상적인 많은 손실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명예와 부와 좋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로를 받는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한다는 놀라운 축복과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님을 주셨고, 구원을 주셨고, 영원한 기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놀랍게 강하게 교훈받는 것은 이같은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 있었으며, 아브라함은 땅을 소유하지 않고 장막을 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76세입니다. 그의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그 땅으로 가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7절)
그는 갈대아우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12장 1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때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단을 쌓았습니다. 하란과 갈대아우르에서 단을 쌓았다는 단어가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야 그가 드디어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 지역모임에 모여지게 된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하시겠다 하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좋은 목소리를 듣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참된 예배를 받으십니다. 이와같은 지역모임에서 있고, 아브람에게는 가나안에서 있었습니다.
8절에서 그는 장막을 쳤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창23:4, 개역한글)
아내 사라가 죽어서 매장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매장할 땅이 없었습니다. 그가 오랜 세월 가나안에서 장막을 치고 거했지만 매장할 땅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땅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그네로, 행인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저희 모두에게 교훈이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 말씀에 기근이 생겼습니다. 왜 기근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말할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람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나가서 자기의 결정대로 해결하려고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믿음의 선진들이 이러한 잘못을 행하게 됩니다. 그는 점점 남방으로 가다가 애굽 가까이 이르게 됩니다.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창12:12-13, 개역한글)
우리가 세상을 의지해서 세상으로 가게 될 때에 이와같은 믿음의 하락을 보게 됩니다. 그는 지금 사래에게 자기 목숨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가나안 땅으로 왔는데요. 그런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실패하고 사람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시험을 통과할 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사래에게 좋지못한 간증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창12:19, 개역한글)
우리가 세상에 가서 세상의 방법대로 이것을 해결해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는 이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이 이것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역모임을 떠나서 세상으로 가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모순되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정직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13:4, 개역한글)
그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 쳤던 장막이 있던 곳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잘못했을때에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처음행위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왔을때 또다른 도전이 있습니다. 이는 롯과의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창13:5-6, 개역한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동거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가져온 많은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이 그들이 함께함을 용납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도전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한해를 돌아보면서, 세상적인 욕심으로 말미암아 취해진 것들이 저희 자신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가? 동거할수 없는 어려움을 야기하지 않는가? 주님이 주신것을 만족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바라지 않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도입하지 않는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그냥두지 않습니다.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야기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영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이 골육이 영어로는 브레들린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형제라는 단어가 아브람을 통해서 처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그 형제를 생각했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창13:8, 개역한글)
아브람은 롯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여기 왔다. 너는 그 약속이 없으니 너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따로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기의 잘못을 말합니다. "나나 너나" 너를 먼저 말하지 않고 나를 먼저 말합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13:10, 개역한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세상은 멸하기 위해 간수되어진 곳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그렇습니다. 롯은 곧 멸망될 곳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갑니다.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간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서 자기 보기에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가 간곳은 멸하기 위해서 간수되어진 곳이었습니다.
"애굽 땅과 같았더라" 먼저 믿은 저희들이 함께 하고 있는 아직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음의 후진인 사람들과 애굽땅을 경험하게 될 때에 아브라함에게는 시험이 되었지만 롯에게는 좋은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땅과 같은 곳으로 가버립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13:12, 개역한글)
롯은 처음에는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들이 소돔에 이르렀을때 롯은 소돔의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로마가 영원할 것처럼 그는 자기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그 땅에 거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도 24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23년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아브라함이 처음 있는 곳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다시 처음 있는 이곳으로 돌아와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