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 아브라함의 믿음 > 23년 12월 31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17-25, 개역한글)
아브라함이 구원받게 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23절에서 이것이 아브라함만을 위한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서 동일하게 구원받게 될 믿음의 자손들에게도 이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살펴보면 저희도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4:18, 개역한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많은 내용들은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저희가 평생에 착하게 살다가 누군가를 미워해서 속으로 욕하면 저희는 영원한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그야말로 제가 지은 죄의 양과 제가 받을 형벌의 양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얘기해 보면 아무리 심각한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만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죄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대로 그것이 공정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저 극악무도한 사람을 예수님은 왜 천국에 보내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또 좀전에 형제님이 말씀하신대로 38년된 병자를 주님께서 일으키셨습니다. 또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습니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주님께서는 이만명도 더 되는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저희가 이와같은 내용들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고 덕언 말씀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하신 분인지에 대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이와같은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믿음을 아브라함이 먼저 나타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저희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는 없지만, 혹시 천국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갈수는 없으니까 한번 예수님을 믿어보자고 한다면 그것은 아브라함이 나타낸 믿음과는 거리가 먼것입니다.
수학에서 확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확률을 곱한것이 기대값입니다. 사람들이 이런것에 기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확률에 기대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고 도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도박은 구분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2월에 말레이시아에 가시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다들 대한항공을 예매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것이 마음속으로 불안하지만 나는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럼 이것은 믿음입니까, 확률에 기댄 도박입니까?
만일 제가 수억의 돈을 어떤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하고 큰 수익을 나중에 얻는다고 하면 대부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에 저명한 사람이 어떤 무동산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투자할 것입니다. 믿고 안믿고는 그 내용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우리가 듣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몸이 죽은것 같은것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년에 너희가 아이를 낳을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닌 친구나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아브라함이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럴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알고 믿음이 견고해진 것입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때 처음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그는 현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이라는 현실을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현실이 어떠함을 분명히 알고 그 말씀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와같이 하실까요? 우리가 마땅히 믿을만한 말을 믿는다면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도저히 사람이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그것을 믿은 사람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마음의 아주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것은 살인이고 간음이고 지옥에 떨어질 죄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마음에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행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배후에서 활동하는 사단이 어떻게 사단이 되었는지, 그 죄악을 그대로 우리 사람이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얼마 범치 않았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샅샅히 살피면 말로 할수 없는 수많은 죄악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하면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내 상태를 보면 내가 자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지만 하나님은 주실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이요, 저희가 가져야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내가 생각할 때에는 작아보이겠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실수 밖에 없는 죄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너무나 큰 것임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