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사람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존재, 방주되신 예수 그리스도

박이레 2023. 12. 22. 21:39

< 복음 : 사람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존재, 방주되신 예수 그리스도 > 강성찬 형제님

다 함께 창세기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다른 신이라 불리는 존재와는 다르게 하나님께서는 이걸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 여러분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에 굉장히 싫어합니다. "아니, 나는 나고 그냥 자유로운 한 존재인데 왜 내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된다는 이유가 있는 건가?" 이렇게 반론을 제기합니다. 사실 이제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만나는 많은 분들 중에 대부분은 어떤 존재가 나를 만들었다고 인정을 합니다. 사실 사람이 자연이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그 인체의 신비에 대해서 알면 알아갈수록, '아니 어떻게 이게 자연이 생길 수 있지?' 이런 의문은 당연히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사람을 만드셨을 것이다라고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자연이, 우연히 생성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분들은 바로 이 부분을 용납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분이냐면,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면 내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존재다. 하나님께 자신이 구속받기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뭐라고 말하시는 대로 살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사람은 자연이, 우연히 만들어졌다라고 이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 말씀을 드린 대로 우리 인체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자연이 만들어졌기는 너무나 불가능한 일이고 분명히 하나님이 만드셨으며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책임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금방 읽은 이 말씀에서도 나와 있는 것처럼 굉장히 존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주신 책임이 뭡니까? 우리가 금방 읽은 부분에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책임을 받았습니까?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려야 되는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높은 위치에 여러분을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스린다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이제 다스린다는 의미가 이제 그렇게 변질이 되었는데요.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위치에 뒀다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왕처럼 그냥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그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다스린다는 의미가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여러분에게 이렇게 한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대전 이 지역에 시장을 맡기면 어떻겠습니까? 저 같아도 대전시장 저보고 하라고 한다면 저는 당장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굉장히 무거운 책임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저나 여러분에게 그것을 제안한다면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람은 책임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요즘에 어떤 프로그램을 보니까, 이제 '나 혼자 산다'라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는 것 같은데요. 이제 거기서 보면 그런 책임들을 모두 떠나서 그냥 산골에 가서 아무 책임 없이 그냥 자기 혼자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이제 이런 것을 이제 추구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연하게 그것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살고 있는 분이 별로 좋아 보이진 않더라고요. 저에게는, 왜냐하면 이 사회 가운데서 뭔가 어떤 일을 겪은 거예요. 어떤 상처를 받아서 이제 그런 상처에서 이제 피하기 위해서 그런 산속으로 들어가서 그런 책임들을 다 내려놓고 사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중에 거기 나오는 분들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까, 대부분 그런 분들이더라고요. 그런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분들, 혼자서 살려고 하는 분들이 이제 정상적인 그런 삶을 사시는 분들이 아니라 어떤 큰 상처를 받고 이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이제 그런 가운데서 들어가 계신 분들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람의 정상적인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부터 하나님은 사람이 책임을 가지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특별히 이제 다스리는 책임,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런 책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분들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제 큰 책임을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대전시장이라든지, 아니면 이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대통령이라든지, 성경에 보면 이런 권세도 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제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하죠. 이제 미국 대통령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도 다 이제 하나님이 그들에게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책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이제 피하시겠습니까? "왜 나한테 이런 무거운 책임을 주는 거야?" 하면서 안 받으겠습니까? 사람은 책임을 감당해야 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주실 때에 그걸 감당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맡기실 때에 그것을 감당하고 그 책임을 지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높은 책임을 맡는 분들도 있고요.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많은 분들은 이제 또 작은 규모의 책임을 맡게 됩니다. 자기의 직장에서 회사에서 자기가 맡은 책임이 있고 또 이제 가정을 대부분 이루고 살아갑니다. 그 가정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의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결코 가벼운 책임이 아닙니다. 한 나라나 한 도시를 다스리는 책임만큼 이제 중요한 것이 한 가정을 맡은 책임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이제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서 이 수고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더 좁게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도 있습니다. 자기의 몸도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자기 몸도 하나님이 다스리도록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을 다스릴 때에 자기 마음대로, 이건 내 권한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고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어떻게 다스리고 관리하였는지 나중에 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책임을 가지신 분들이 이제 많이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했다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더 조심해야 되는 것이죠. 한 도시를 다스리는 책임, 그리고 우리 가정에 대해서, 내 가정에 대해서, 내 남편, 내 아내에 대해서 어떻게 했는지, 내 자녀들에 대해서 어떻게 했는지를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했는지도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내 영혼에 대해서 어떻게 했는지를, 항상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냥, 나는 그냥 여기 내 스스로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거야, 이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분명하게 책임이 있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물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제 그 심판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6장으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부터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5-8).

성경은 우리가 오해하지 않도록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 있는 존재이고 그리고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가 금방 읽은 이 부분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고" 아주 엄중하고 심각한 그런 심판입니다. 여러분은 '아니, 사람들이 얼마나 실패했길래, 얼마나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길래 하나님이 이렇게 심판하시는가?'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한번 이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행해왔는지를, 우선 이제 첫 번째 사람인 아담에 대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 조금 다시 앞으로 가셔가지고, 3장 17절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그 동산 안에 각종 먹을 수 있는 많은 열매 맺는 실과를 두시고 그것을 다 먹게 하시고 단 하나의 열매를 금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그는 왜 그 열매를 먹었습니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사단이 아담에게 와서 "그것을 먹어라, 그러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담은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냥 하나님 아래서 하나님께 책임 있는 존재로 계속 사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이게 또한 모든 사람들이 지금 나타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아래에서 하나님에게 책임 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싫어하고, "아니, 왜 내가 하나님께 나중에 이것을 검토받아야 되는데?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를 왜 평가를 받아야 되는데?" 이제 그걸 싫어하고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하나님과 같이 될 거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많은 반역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자기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죠. 많은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죠.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왜 내가 저 사람 밑에 있어야 되는데,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첫 사람 아담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우리가 17절에 읽은 것처럼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그래서 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내 밑에 있는, 내가 책임지고 다스려야 되는 그런 것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불순종했을 때 내 관리 아래 있는 내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나의 영혼을 파괴하게 됩니다. 내가 불순종했을 때 나의 가족을 망치고 나의 나라를 망치게 됩니다. 저는 이 한 사람 아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어떤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자신은 어떤지, 나는 정말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리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있는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가, 내 마음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이 불순종한 아담처럼 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을 때에 나에게 맡겨진 많은 존재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우리는 그 길로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어리석은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실패했을 때, 내 자신과 내 가족이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6장에 읽은 대로 우리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제 두 번째 사람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4장에 7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이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형제였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 4:7-8).

여기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이 나옵니다. 이제 그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도 불순종하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불순종하냐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이 땅의 소산이 아니라 피를 가지고 나와야 된다는 것을 이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그 아담의 가족에게 그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자기가 농사를 짓는 사람이기에 자기가 한 것으로,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그냥 가지고 나옵니다. 하지만 그의 아우 아벨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피를 가지고 이제 양으로 짐승으로 하나님께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른 아벨의 예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재물은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그것에 대해서 이제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노하는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고 그로 인해서 분노가 있고 그로 인해서 죄의 소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죄의 소원대로 그 죄의 욕구대로 하지 말고 너는 죄를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죄를 다스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죄가 이끄는 대로 자기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살인을 하는데 그 살인의 대상이 자기 동생인 것입니다. 거기까지 사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아담의 후손으로 죄의 본성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 아담의 모든 후손은 죄의 본성이 그 몸 안에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나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책임이 면제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소원은 너에게 있을지라도 너는 죄를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죄가 생각이 나는 것, 쟤는 미워 쟤는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실제로 죽이는 죄를 범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너의 마음속에 그 미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 마음대로 행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가 죄를 짓는 게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그것을 다스리는 책임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경고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벨을 찾아가서 죽이는 것입니다.
가인이 이제 아벨에게 찾아가서 죽이는 장면을 보면은 굉장히 계획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8절에 보면은"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겉으로는 이제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이렇게 말을 했다는 것인데요. 그냥 별 문제 없는 것처럼 가인은 아벨에게 찾아가 가서 이제 평상시처럼 대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아무도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에 가인은 그 아우 아벨을 쳐서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분노 가운데서 감정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그 마음속에 키우고, 키우고, 그리고 때를 노리고 그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얼마나 사람의 이제 악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서 여러분에게도 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지, 우리 마음속에 여러 가지 분노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를 잘 다스렸는지, 아니면 그 분노대로 기어코 내가 이 분노대로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그 분노를 이루려고 계획을 짜고 안 그런 척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사람을 죽이는, 자기의 형제라도 그렇게 해버리는, 이제 그런 가운데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참 사람이 얼마나 타락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가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이제 또 다른 세 번째 사람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그것은 이제 '라멕'이라는 사람입니다. 4장 23절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23-24).

여기 이 라멕은 가인의 후손입니다. 이 라멕은 가인보다도 더 나빠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라멕은 여기 보면 여러 아내를 두고 있습니다. '아다'와 '실라' 적어도 2명 이상의 아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결혼의 제도를 떠나서,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을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라멕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의 정욕을 따라 여러 아내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들으라." 뭘 자랑하고 있냐면 자기가 얼마나 포악한 사람인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포악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조금 다쳤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조금이라도 다치게 한다면 내가 그 사람을 죽인다. 나는 조금 상처를 입었더라도 나의 상처를 만든 사람은 내가 반드시 죽인다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그것이 어린 소년이 그냥 실수로 한 일이라도 나는 반드시 그 소년을 죽인다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사람들은 이와 같이 자기의 정욕대로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잔인하고 포악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이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6장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하나님은 반드시 이런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 심판을 피할 걸로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살펴볼 때에 이 하나님의 심판의 세 가지 측면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이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책임을 져야 될 때, 여러 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이제 어떤 팀이나 어떤 부를 맡고 있을 때에 이제 그 위에 또 상급자가 있죠. 그 상급자에게 우리 팀에서 행한 일, 이제 우리 부에서 행한 일을 이제 말하게 됩니다. 이제 평가를 받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평가가 조금 공의롭지는 않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하지는 않다. 우리가 평가를 받게 되면 항상 드는 생각입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봐도 내가 받은 점수를 보면, 내가 이거보다는 공부를 좀 더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제 평가할 때 보면 그래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했는데 이런 부분을 알아주지 못하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평가하시는 것은 완벽합니다. 여러분의 마음까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가 될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 전혀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의롭게 정확하게 평가하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걱정을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눈에 평가받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부풀리는 것을 자주 합니다. 오히려 내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 이상을 받으려고 부풀리고 그럴 듯하게 보이고 이렇게 세상은 평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그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정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게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심판은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7절에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김없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다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온 세상을 덮는 홍수를 통해서 심판하십니다. 노아의 홍수를 그린 그림들을 이제 보게 될 때에 조금 이제 잘못된 그림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그림이냐면, 이 온 땅에 홍수가 있는데 저쪽에 높은 산이 있는 거예요. 높은 산에는 꼭대기에는 아직 물이 안 잠겨 있어요. 그래서 거기는 이제 몇 동물들이 거기 남아가지고 살아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그래도 높은 산에 거기에 몇 동물들은 물에 잠기지 않고 살아남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그린 그림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심판에 대해서 나는 피할 곳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나는 그래도 어떻게 그 심판에서 조금 하나님이 봐주실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는 착한 일도 했으니까, 그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항상 나쁜 일만을 한 것은 아니잖아.'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온전히 거룩함을 가지고 여러분을 평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한 율법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을 범한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만 좋은 일을 하고 그리고 다른 것들은 나쁜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 잘못하거나 모두 잘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온전한 거룩함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말고 이 심판을 피할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세 번째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심판이 사람들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이제 신약으로 가서 마태복음 24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노아의 홍수와 관련된 말씀을 우리 주님께서 하신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하나님께서 이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이 엄청난 심판이 곧 임할 것을 말씀하셨을 때, 이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행하고 있었냐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다 지면에서 쓸어버리는 그 엄청난 그 시험의 날까지, 그 심판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일상적인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일이 없을 것처럼,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에 이렇게 행하지 않길 바랍니다. 이 심판에 대해서 지금 바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교회를 몇 번 더 나오다 보면 이 심판을 면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조금 더 교회에 착실하게 나오게 된 다음에 그때 심판을 면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해서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이 심판이 임할 것으로 그 말씀으로 듣고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심판은 여러분이 생각지 못한 때에 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닐 거야.' '아직 아직 조금 시간이 더 있겠지.'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오는 것입니다. 왜 이 사람들이 그 엄청난 심판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그냥 결혼식 하고, 이제 먹고 자고, 그런 게 있었겠습니까? 아직 심판이 있으려면 시간이 좀 있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다시 이제 창세기 말씀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6장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6장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6장 6절에 보면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심판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한 사람들이 벌을 받으면 아주 마음이 통쾌합니다. "아유, 저 사람들 아주 저런 벌 잘 받았다."라고 합니다. 당연하지,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거역하고 반역한 사람들에 대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근심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면서 방주를 예비하십니다. 그 홍수에서 살아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이 온 지구를 물로 덮으시는데 그 홍수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그리고 다른 동물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배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리고 오늘 여러분에게도 그 은혜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베푸시는 것에 대해서 이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6장 14절부터 보겠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4-18).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제 홍수로 심판하실 때에 한 방주를 만드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방주라는 것이 이 상자 모양으로 된 이 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 홍수에 떠 있을 수 있는 배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제 배에 대해서 특별히 이렇게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로는 14절에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안밖에 칠하라." 첫 번째로 이 역청으로 안과 밖의 칠을 하게 됩니다. 역청이라는 것이 이제 방수제입니다. 그 방수제를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이제 안팎에 칠하게 됩니다. 그리고 15절에 하나님께서 그 광주의 크기가 모양이 어떨지를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장의 길이가 이제 300 규빗 '규빗'이라는 것이 성경에 나와 있는 이제 단위입니다. 50cm 정도 되는 건데요. 그래서 이제 장이 300규빗이라면 150m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광이, 이제 '넓이'가 '폭'이 50 규빗, 고가 높이가 30 규빗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그 안의 구조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그 안에 있는 것도 어떻게 만들지도 말씀하십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이 방수 재료 역청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배에는 이제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물이 안 들어와야 됩니다. 당연하죠. 여러분이 이제 배에 대해서 생각할 때 첫 번째로 중요한 게 배 안에는 물이 안 들어와야 됩니다. 그리고 그 물이 안 들어오게 하는 것이 이 역청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이제 역청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사실 이 성경 원문에 역청에 해당하는 단어와 이제 같은 어근을 쓰고 있는 단어가 어떤 단어냐면 '속죄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속죄하다는 것이 어떤 거냐면, '죄에 대해서 대가를 지불하다'는 것입니다. 그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여기서 이제 '속하다'라는 단어가 이제 두 번 나오게 되는데요. 이 속하다라는 단어와 이제 같은 어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앞에 우리가 본 '역청'이라는 단어입니다. 뭐가 속하게 하냐면 피가 죄를 속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피가 죄를 속하냐 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은 항상 생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자가 반드시 죽어야 됩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죄를 위하여 피가 흘려진다면, 그 죗값이 치러진다면, 그 피가 죄를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심판에서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죗값이 치러지는 것입니다. 그 피가 흘려지는 것입니다. 그 역청이 배에 발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역청만이, 이 죄를 속하는 피만이 우리를 심판에서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물이 우리를 덮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이 속죄 제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로마서 3장을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여기서 이 화목 제물이라는 것이 우리가 앞에 읽었던 그 피가 죄를 속하는 그 속죄 제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바로 이 속죄 제물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속하는 그 피인 것입니다. 여러분을 심판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그 역청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그 심판에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그 방주 안에서, 역청으로 안팎이 달린 그 방주 안에서 심판을 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신다면,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그 죄를 속한 것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그 심판에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가 읽은 창세기 말씀에서 그 방주의 두 번째 것을 생각하게 되겠습니다. 배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엎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바다 가운데서 전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배의 사고 중에 많은 것이 이제 파도 가운데 뒤집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놀라운 것이 우리가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이 "그 방주의 제도가 이러니라"고 하시면서 그 길이를 그 폭을 그 높이를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300규빗, 50 규빗, 30 규빗으로 만들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게 그 배의 길이와 그 폭과 높이의 비율이 지금 만들어지는 안전한 선박의 비율과 정확하게 같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선박을 만들 때에 이제 큰 유조선을 만들면 사실 어떤 면에서는 만들기가 쉽습니다. 그 비율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왜 비율이 정해져 있냐면, 이 바다의 부는 여러 큰 파도 가운데서 그 배가 안전하게, 전복되지 않게,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배가 이렇게 좌우로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가장 안전하게 있는 그 비율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기 대전에 보면 선박 해양연구소가 있는데 선박 해양연구소에 과학자들이 이 방주의 비율대로 모형을 만들어서 수조에 놓고 실험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조에다 넣고 파도를 치게 하고 이 배가 얼마나 안정한지, 파도에 전복되지 않는지 실험을 했는데 굉장히 안정하게 그 위치를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이제 논문으로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똑같은 비율이 여기 나와 있는 그 노아의 방주의 비율인 것입니다. 이 비율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방주는 전복되지 않는다.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결코 뒤집어지지 않는 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운데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셨으므로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송사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이 내리신 판결에 대해서 뒤집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셨으므로, 이 온 우주 가운데서 가장 높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셨으므로 그것을 송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판결은 의로운 판결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다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온전히 우리의 죄를 다 치루셨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이렇게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의롭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전복시킬 수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그 큰 파도 가운데서 안정하게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정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또한 한 가지 더 이유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방주 안의 구조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자세하게 말씀을 해 놓으셨습니다. 이제 3층으로 만들고 그 안에 이제 간들을 막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제 그렇게 안에 구획을 나눈 것은 거기에 많은 여러 다양한 동물들이 이제 들어가기 때문에 이제 그런 용도로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제 제가 이제 선박을 전공을 했잖아요. 그래서 그 분야가 이제 배의 안전성을 위해서 공부하는 분야가 세 분야가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맨 처음에 말했던 물이 안 들어오게 하는 것, 두 번째가 이제 운동적으로 안정한 것을 연구합니다. 파트가 그렇게 나눠져 있습니다. 유체 역학 분야가 있습니다. 파도 가운데서 배가 뒤집어지지 않게 하는 분야가 한 분야가 있습니다. 또 세 번째가 구조 분야입니다. 그 배 자체가 구조적으로 튼튼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배 사고가 어디서 나냐면, 뒤집어지면서 사고가 나고 또 배가 부러집니다. 굉장히 쇳덩이로 만들어져서 견고한 그런 배지만 큰 바도가 이렇게 치게 될 때에 특별히 배 길이 정도 진폭을 가진 파도가 오게 될 때에 그 파도가 배 전체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면 배 끝은 올라가고 배 가운데 부분은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배가 이렇게 부러지게 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 사고 사진을 보면 가운데가 그냥 똑부러져 있는 그런 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그 내부가 그냥 통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획을 만드는 것입니다. 3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박스 3개가 연결되어 있으면 더 튼튼한 것처럼, 이제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벽을 또 만드는 것입니다. 아내가 벌집처럼 그런 모양을 가지고 있게, 그래야지 배가 파도가 이렇게 꾸부러뜨려도 부러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방주는 구조적으로도 튼튼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망입니다. 이 사망 앞에서 부러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그 사망으로 말미암아 그 삶을 끝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은 로마서 8장 34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라고 돼 있습니다. 그분은 죽음이라는 파도를 이기는 분입니다. 다시 살아나신 분입니다. 죽음이 결코 그분을 끝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지금도 살아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누가 정죄하리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전한 구원인 것입니다. 결코 손상될 수 없는 구원인 것입니다. 옛적의 방주가 그랬고, 또한 그 방주가 상징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이 그런 것입니다.
참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이 이 구원을 받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튼튼한 방주입니다. 결코 전복되지 않는 그런 방주입니다. 그 심판의 물결이 들어오지 않는, 그 피가 온전히 죄를 속하는 그런 방주입니다. 참으로 이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주님을 믿고 참 영원한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영생을 누리시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