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 복음말씀_세가지 법정 >

박이레 2021. 7. 21. 00:34

2018년 2월 3일 토요일

 

강사 : 강성찬 형제님

 

< 복음말씀_세가지 법정 >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죽고 난 후에 어떠한 일이 있을까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것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죽음 이후를 경험하고 다시 살아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음 이후에 어떠한 일이 있을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20:11-15, 개역한글)

 

히브리서 9장에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한번 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번 죽는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이 분명하게 경험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 죽음이 확실한것처럼 죽음 이후의 심판도 분명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주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죽음 이후에 백보좌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의로운,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그 흰보좌가 우리에게 그 성격을 말해줍니다. 이 땅에도 여러가지 재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의 불완전함으로 말미암아, 증거의 불충분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그 재판은 종종 굽어집니다.

그러나 백보좌의 심판은 의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심판을 하시나요?

그 분은 크고 흰 보좌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 큰 보좌는 그분의 큰 권위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흰보좌는 그분의 의로운 성격을 말해줍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나에게 베푸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심판을 받습니까?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모든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가 이 땅 가운데서 어떠한 지위를 누렸던지, 하찮은 인생을 살았던지 모두가 여기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심판에서 심판장에게 잘 말한다면, 이 심판을 좀 면제받을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땅에서 재판을 받게 되서 판사앞에 나갈때에 "내가 잘못했으니 좀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한다면 그 판사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겠습니까?

그리고 이 심판은 더욱 오차가 없는 심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핑계도 댈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을 받는 증거가 책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20:12, 개역한글)

 

혹시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졌을찌라도 모든것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받을 형벌은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심판의 형벌은 영원토록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는 형벌입니다. 여러분은 이 심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분명하게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땅 가운데 계실때에 이 심판에 대해서 여러번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44절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46절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9:43-48, 개역한글)

 

주님의 이 경고의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만일 우리의 발이 우리로 범죄하게 해서 지옥에 가게 되면 그 발을 잘라버리라고 합니다. 손과 눈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지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하기까지 가서는 안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큰 고통은 우리의 수족이 잘리는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고통을 당하는것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지옥을 피하는것은 당장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면 "아 그런가요? 지옥은 피해야 하겠지요." 라고 남의 일 말하듯이 말합니다. 혹은 "내가 이런 사람인데 어쩌라는 말입니까?" 라고 하면서 믿는것을 미룹니다. "일년정도 후에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서 주님을 믿고 하늘나라에 가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옥을 피하는 것은 지금 당장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구원받을만한 날이고 은혜받을 만한 날인 것입니다.

 

앞에 시간에 중풍병자를 친구들이 데리고 온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있는 도중에, 지붕을 뜯어서 그 환자를 예수님 바로 앞으로 내렸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구원의 문제를 시급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은 경우는 예수님의 말씀이 끝난후에 나오시면 부탁하자라고 할텐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집회 도중에 당장 지붕을 뜯어서 예수님 앞에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이것입니다. 항상 시급하게 구원을 받기 위해서 찾은 것입니다.

 

구원은 시급하게 찾아야 합니다.

지금당장 손과 발을 떼고 눈을 빼며 구원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지옥의 형벌이 너무나 끔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운 형벌을 생각할때, 여러분은 믿지않고 죽어서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앞에 섰을때, 뭐라고 변명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명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살아왔다고 말할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이 세가지 타입이 있다고 말합니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1:19-20, 개역한글)

 

여기 첫번째 핑계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이렇게 핑계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서 계신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핑계할수 없도록 미리 만들어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 만물입니다.

 

여러분은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에 이렇게 핑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다는것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계실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만물을 통해서 알게 하셨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의 몸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 더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의 구조가 누군가 만들지 않았으면 스스로 존재할수 없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3, 개역한글)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았다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이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아닌, 사람을 초월하는 무언가 다른 존재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초월하는 다른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싫은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므로 하나님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싫고 내 마음대로 할수 있는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든것은 그들이 분명히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신성을 보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다른 변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놀라운 세상을 보니 하나님이 계셨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을 좋아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이신줄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에 대해서도 너희가 핑계할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2:1, 개역한글)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2:15,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양심을 주셨습니다. 이 양심을 '마음에 세긴 율법의 행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을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때, 그것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다른사람이 잘했을때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주셨습니다.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을 판단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판단합니다.

죄를 지으면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인 것을 싫어하시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낸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이렇게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또 세번째 다른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앞의 두사람처럼 핑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아주 당당하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계신것도 알고 선을 좋아하시는 것도 알기에 그렇게 살았습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롬2:17, 개역한글)

 

이것은 좋은 뜻이 아닙니다. 자기가 이러한 율법들을 지켰다고 자랑하며, 이 사람은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특별히 유대인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종교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여러분이 스스로 행한일로 자랑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특별히 죄를 행하지 않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새벽기도도 다닌다. 나를 분명히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늘나라에 갈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랑하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이러한 자랑을 가지고 나온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랑하는 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롬2:21-23, 개역한글)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2:29, 개역한글)

 

그 자랑하는 사람에게 두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마음의 유대인이 유대인인 것입니다. 마음이 의로운 자가 의로운 자 입니다. 그리고 그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입니다.

 

겉으로 행하는 행동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어떠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의롭다라고 인정을 받을만한 것입니까?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종교적인 활동들을 많이 했을찌라도 마음은 어떤지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좋은 일을 많이 했을찌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핑계하는 두사람이나, 자신의 일을 자랑하는 이 한사람이나 모두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영원히 던져지게 될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이 심판을 받지않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8장에는 아주 특별한 법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8:1-11, 개역한글)

 

여기 또 다른 예수님께서 심판장이신 법정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먼저 말씀드린 크고 흰 보좌의 법정과는 사뭇다른 모습 입니다.

사람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데려와서 이 여자에 대해서 판결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심판장은 예수님, 피고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 그리고 고발자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재판장에서의 판결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로 내려집니다.

이 여자가 어떻게 이러한 판결을 받은 것일까요.

 

여기에는 특별한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자를 잡아와서 간음중에 잡힌 이 여자를 어떻게 할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사 손가락을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많이 사용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요9:6, 개역한글)

 

특별히 그 소경의 눈을 뜨게하시는데 손을 사용하십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바디메오라는 소경은 그냥 말씀으로만 눈을 뜨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진흙을 이기는 그 손을 볼때, 창세기에 나와있는 하나님께서 흙을 빗어 사람을 만드시는 장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아마도 날때부터 소경된 이 사람은 눈동자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흙을 빛어 그 눈에 눈동자를 넣어주신 것입니다.

마치 맨처음에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 소경된 사람을 원래부터 알던 사람들이 보고 "이사람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눈동자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눈동자가 생겨 인상이 달라보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는 주님의 손을 보게 됩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8, 개역한글)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구원받은 그 구원을 내손에서 빼앗을자가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라는 표현을 많이 봅니다.

이와같이 요한복음에서 그 손은 창조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손이었으며 구원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8장에서 땅에 무언가를 쓰신 예수님의 손은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나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실때에 특별히 십계명은 손으로 써서 주신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신9:10, 개역한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계명을 두 돌판에 하나님이 친히 손으로 써서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써서> 이는 어떠한 느낌을 주나요?

 

주는분이 얼마나 이 법을 귀하게 여기는지 알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손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이메일로 편지를 보냅니다.

그래서 오늘날 손편지를 받게 되면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며, 정성스럽게 여기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율법의 말씀을 친수로 쓰셨다는 것을 듣게 될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냥 사람들이 생각할때, 형편이 되면 하고 안되면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돌판은 한번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이 두 돌판을 받아서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 두 돌판이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돌판은 전달되기도 전에 모세의 손에서 떨어져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두 돌판에 십계명을 써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출34:1, 개역한글)

 

사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한번 손으로 돌판에 써서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람에게 능력이 없어서 못지킨다 할찌라도 "우리는 못하겠어요"라고 하고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행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이 말씀을 얼마나 경히 여기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그냥 사람들의 생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데려온 사람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는데 당신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수많은 의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기이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얼마나 낮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지키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아닌 다른사람들에게만 이 말씀을 지키라고 잣대를 들이 댑니다.

마치 간음중에 잡힌 여자를 데려온 사람들과 같습니다.

 

사실 간음중에 잡힌 여자와 간음중에 잡힌 여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과의 차이는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그 여인은 간음중에 현장에서 잡혔다는 것이고 그 여자를 잡아온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숟하게 간음하는 죄를 짖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을 의롭다 말하며 그 여자를 자신이 당연히 정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우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땅에 손으로 글씨를 쓰실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여자를 잡아와서 율법대로 처형해야 한다고 기세 등등하게 온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

 

율법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를 데려온 사람들이 나이 많은 자들로 부터 시작해서 한명씩 한명씩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결국 모두 다 그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을 때도 동일하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20:18-19, 개역한글)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실때에 마음속에 죽을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히12:19, 개역한글)

 

이것은 사실 좀 이상한 말처럼 들립니다. 여러분이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 소리가 듣기 싫다면 귀를 막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귀를 막는다고 해서 안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사람들의 양심에 말하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귀를 막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두렵고, 영원한 심판 앞에서 멸망을 당할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지 마십시오." 라고 한 것입니다. 말씀하는 분이 멈춰야지만 안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있던 양심의 가책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느꼈던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산 가운데서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 가운데서 그렇게 말씀하셨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한 말씀을 하셨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동일한 하나님의 음성이기에, 우리의 양심을 찌르는 음성이기에 피하지 않고는 베길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음성은 그 자리를 벗어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가책이 느껴질때에 단지 도망간다고 그 양심의 가책을 덮거나 피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예수님 앞에서 해결하지 않고는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이 길 외에는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 이외에 다른신을 섬기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여러분은 하나님 외에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까?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효도 하나요? 또 실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기에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사람을 보고 미워하기만 해도, 욕하기만 해도, 이미 살인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또 말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실제로 간음하지 않았을찌라도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탐내지 말라> 여러분이 실제로 다른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더라도 다른사람의 물건을 보고 갖고싶어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도적질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그 양심의 가책을 느낄때에 그 가책을 피하고 덮어 두려고만 하지 말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서 그것을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간음중에 잡힌 여자는 다른곳으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옆에 앉아서 말했습니다. "주여 아무도 없나이다."

그 여자는 예수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는 합당한 권리를 가지신 분인지 알았으며 예수님께서 어떠한 판결을 하시든같에 다 받겠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예수님으로 부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는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온다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판결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두번째로 우리가 살펴본 예수님의 재판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세번째 재판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신 걸까요? 그런 큰 죄를 저지를 여인을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의로운 근거가 무엇일까요?

 

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3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8:28-32, 개역한글)

 

이번에는 우리 눈에 보기에 정말 법정이라고 부를만한 제대로 된 법정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두가지 법정은, 우리가 세상에서 볼수없는 하나님의 법정, 그리고 또한 이 세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법정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게 참된 재판이 이루어진 그러한 법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8장에 나와있는 빌라도의 법정은 겉으로는 제대로 되어 있는 법정이었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엉터리였습니다.

여기서 판사는 빌라도 입니다. 그는 판사이지만 이 재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침일찍 사람들이 빌라도를 깨워서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 재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너희 법대로 하라"라고 하고 치워 버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고소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고소하는 유대인들은 재판장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과 접촉하면 유월절 명절을 먹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자기는 더럽혀지지 않을려고 하고 다른 사람만 자신의 잣대로 고소합니다. 그 고소의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18:30, 개역한글)

 

이 말의 뜻은 이것입니다.

"내가 넘겨준 사람은 행악자다. 빨리 처리해 주시오." "내가 고소하는 사람은 항상 나쁜사람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안들면 저사람이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기준을 세웁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고소를 받고있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빌라도가 조사를 해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요18:38, 개역한글)

 

예수님에 대해서 판결은 이렇게 나게 됩니다.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요19:16, 개역한글)

 

이 말도 안되는 재판 가운데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는 선고를 받게 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됩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빌라도는 그 재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요18:31, 개역한글)

 

이 재판은 죽음과 관련된 재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고 여러분의 죽음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죽음이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음을 믿지 않고 죽는다면 처음에 말씀드린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빌라도도 죽음의 심판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억지로 끌려 나와서 이 심판에 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다른 친구들의 권유에 못이겨 나오기 싫지만 일요일 아침부터 이 자리에 나왔다 할찌라도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죽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죽음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오기 싫지만 억지로 나와서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은 미리 예언된 죽음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8:32,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것을 미리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인자가 들려야 하리니>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려 죽는다는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형벌의 십자가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어떻게 하다보니 힘이 약해지셔서 이러한 죽음을 당한것이 아닙니다.

이 죽음은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영원전부터 계획하신 것이고 이제 이땅에 오셔서 이루신 죽음입니다.

 

여러분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요18:37, 개역한글)

 

이 죽음을 당하시는 분은 왕이십니다. 왕으로 나셨고 이 왕은 진리에 속한 자들을 모으시는 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 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모으시는 왕입니다.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요19:7-8, 개역한글)

 

이 분은 왕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럼 여러분은 여기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왕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능력과 큰 권세가 있는 사람이 왜 죽는단 말인가? 그리고 앞서 조사해보았지만 죄를 찾을수 없는 예수님께서 왜 죽어야 한단 말인가?"

 

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요19:10-11, 개역한글)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대답하지 않는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다면, 자원해서 죽는것이 아니었다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일 수 없습니다.

 

왕이신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자원해서 죽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잡혀서 억지로 죽는것이 아닙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10:4, 개역한글)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개역한글)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10:17-18,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시는 방법은 단 한가지 입니다. 그 피가 흘려져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간음한 여자가 지은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이 죄없는 피가 흘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황소와 염소의 피, 짐승의 피는 능히 그 죄를 없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죄가 없으신 바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을 좆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그 몸을 십자가에서 드리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일이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믿고 그 흘린 피가 여러분의 죄를 온전히 사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10:17, 개역한글)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히10:16, 개역한글)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돌판이 아니라 저희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구약에 나와 있는 '손'에 대한 표현은 사실, 상징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하나님은 우리처럼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히10:16, 개역한글)

 

그러나 17절에 나온 손은 사실, 실제적인 손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손에 십자가에 못이 박힌 손으로 우리 마음속에 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여러분의 죄를 사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믿는다면 이제 예수님께서 그 손으로 친히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써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대 앞에 서지 않고 주님의 복스러운 말씀,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라> 라는 은혜의 말씀을 듣고 하늘나라에서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