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 복음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 23년 12월 10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1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2:1-12, 개역한글)
1절에 주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를 여행하신 후에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주님이 머무셨던 곳은 아마도 베드로의 집이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님을 보러 모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문 앞에서도 주님의 모습을 볼수 없었습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막2:6, 개역한글)
그리고 주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참고하면,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주님의 일을 막고자 하는 세력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주님은 일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그것을 막을 세력이 없습니다.
2절에서 주님은 주님의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중풍병자를 데리고 그곳으로 온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주님앞에 중풍병자를 데리고 갈수 없어서 지붕을 뜯어서 병자가 누운 상을 줄에 달아서 내렸습니다. 중풍병자를 주님 앞에 데려다 놓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 가운데서도 억지로 와서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말씀에 관심이 없을수도 있습니다.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서 이곳에 온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모임에 와서 말씀을 듣게 되고 들은 말씀을 이해하게 되는것은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모임 성도님들이 기도하고 또 인도하여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실제적인 노력으로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구원받으신 분들은 자기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또 그 뒤에는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지만 받은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내려온 침상의 중풍병자를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것을 방해했으니 혼내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2:5,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중풍병자를 돕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는 여기 왜 와 있습니까? 병에 걸렸고 병에 낫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고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 이상을 주시는 복된 분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병에 걸리면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혼의 질병입니다.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맞딱뜨리면 영원한 멸망으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불못에서 믿지 않는자들이 겪는 심판의 고통은 말로 표현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질병을 낫고자 하여 나온 사람에게 죄사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리고 세상으로 가 버린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정말 중요한 것을 제시하십니다.
6절에 보면 주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마음으로 의논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빛으로 서로 주고받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2:7, 개역한글)
당시에는 사람이 육체의 질병을 갖게 되면 그 사람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람에게 주님께서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그것은 굉장히 참람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나님이 아닌 자가 말한 것입니다.
심판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참된 용서를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사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사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 심판에 대해서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은이가 오빠에게 잘못했습니다. 오빠는 매우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윤우가 소은이 누나 대신에 미안해라고 오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누가 사과해야 하죠 소은이가 해야 합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있고, 죄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으면, 죄를 지은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 용서는 현준이가 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괜찮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지으셨고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데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저버린 것입니다. 썩어져버릴 금수를 하나님의 영광과 바꿔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용서를 주님께서 하고 계신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막2:9, 개역한글)
이 중에 어느 것이 쉽습니까? 사람들에게 분명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중풍병자가 제 상을 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것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두가지 말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즉각적으로 보이셨습니다. 중풍병자의 병을 즉각적으로 고치시는 분이 이 죄의 죄를 사하지 못하겠습니까?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2:12, 개역한글)
주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을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권하고 말씀을 잘 듣고 참된 믿음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꼐서 은혜를 베푸셔서 말씀을 듣는 분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