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말씀_ 나무 사이에 숨은사람 > 조재훈bro
2019년 1월 18일 금요일
강사: 조재훈 형제님
< 복음말씀_ 나무 사이에 숨은사람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개역한글)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7-9, 개역한글)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5-17, 개역한글)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4-10, 개역한글)
함께 읽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은 창세기 입니다. 창세기에는 시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첫번재로 창세기 1장 1절은 분명하게 말씀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차조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게서 이땅과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창조자 하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시작뿐만 아니라 우리는 첫사람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첫사람의 이름은 아담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서 존귀하게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두신 에덴동산은 사막같은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두시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두신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먹기 좋고 보기 좋은 많은 실과를 맺는 그런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선하시고 풍성히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주셨다고 나옵니다. 인생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복을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을 갈망하고 있지만 참된 인생의 복은 하나님께로부터만 옵니다.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거기에 두시되 책임있는 존재로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기계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책임이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두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에 대한 책임 입니다. 그것은 피조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시고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서 보이길 원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할때에 그는 참된 복을 누린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 입니다. 참된 복 뿐만 아니라 생명이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할때는 저녕 죽으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반드시 결과를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 불순종의 결과는 죽음 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책임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 두가지 사람에게 두신 책임입니다. 그런데 이 첫사람 아담은 무엇을 했는지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택합니다. 생명이 아니라 사망을 택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입니다. 그때 아담을 어떻게 해야만 했습니까? 아담은 이렇게 했나요? "나의하나님 나의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제가 하나님께서 주신모든 복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그 열매를 따먹었나이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을 택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모든것을 주셨건만 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하여 이 마음이 하늘과 같이 높아져서 저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나이다." 에덴동산을 온통 뒤지면서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디계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오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범죄한 순간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고 나왔던 것이 아니라 무화과 나무 잎을 따서 그것으로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죄는 항상 부끄러움을 가져옵니다. 그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그는 잎이 넓은 무화과 나무잎을 따서 치마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의 죄가 가리워질 수 없었습니다. 만일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가리워 졌다면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자 동산 나무 사이에 들어가서 자기몸을 숨겼습니다. 여러분,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나무 사이에 숨는다고 그가 하나님을 피할수 있었겠습니까? 아니죠. 죄가 드러났는데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가릴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그를 가까이 하시는데 그가 하나님 앞에 숨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담은 이와같이 하였을까요? 왜 나무 사이에 숨었을까요? 그 이유는 죄가 부끄러움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사람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었을때 교만한 바보가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슬프게도 이와같은 일들이 오늘날에도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아들이며 딸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도 누군가의 아들과 딸입니다. 그 부모님 위로 쭉 올라가면 한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 한부모는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죄인이 되었고, 모든 세상 사람들은 아담의 형상, 타락한 죄인의 현상으로 이땅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그들의 안에도 있는 것에 죄에대한 부끄러움과 영적인 무지를 타고 태어납니다. 사람은 교만한 바보로 태어나는 것이지요. 아담이 했던 그런 어리석은 행동들이 오늘날에도 각자의 마음에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우리 안에서 경험되고 있는 바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 하십니까? 나무 사이에 숨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담 한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나무사이에 숨은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그것은 아담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 나의 이야기 입니다. 나무 사이에 숨은 나의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앞에서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저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신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나무사이에 숨은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나무 사이에 숨은 사람이 아담이었듯이, 나도, 오늘날도 나는 무화과 나무잎으로 치마를 만들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때, 그리고 그것이 드러났을때, 여러분은 자랑스러웠던가요? 아니요. 여러분이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를 생각할수 있을것입니다. 부모님 앞에 거짓말을 했을때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그 많은 죄들을 가리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올바른 것들로 치마를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생활에 귀의를 하고, 여러가지 활동들에 참여하고 여러가지 집회에 참석하고 봉사를 하고 선을 쌓습니다. 공덕을 쌓습니다. 그러한 것으로 그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하지만 그것이 가려지지 않는다는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 잎은 뜨거운 바람이 불면, 쉬이 말라서 그 잎사귀의 치마가 말라서 부스러져서 떨어지듯이 사람이 쌓는 종교활동과 선행들은 그때는 잠깐의 만족을 주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함을 본인 자신이 스스로 압니다. 여러분이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부끄럽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종교 활동을 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의 그런 활동이 영원한 것이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칭찬은 받을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나의 영혼을 구원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뿐만 아니라, 또 모든 사람들이 나무 사이에 숨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던 사람은 '무지'라는 나무 가운데 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을때 "아,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어렵고 많이 배워야 할것 같습니다."라는 핑계로 바쁜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쁜 시간'이라는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예, 좋은 말씀이지만 할일이 너무 많습니다. 직장에서의 일도 할일이 많고 가정에서의 일도많고 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이것을 믿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이라는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저는 하늘나라가 없다고 생각 합니다. 지옥도 없다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도 안 계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그런 자기생각이라는 나무뒤에 숨습니다. 어떤사람은 '자기 계획'이라는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저는 조금 더 있다가 믿겠습니다. 제가 죽을때가 되서 그때 하나님을 믿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영원히 살것처럼 생각하고 죽을때를 결정할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는 조금만 생각하면 우리가 죽을때를 스스로 결정할수 없음을 알지 못합니까? 제가 예전에 한 장례식장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한 성도님의 장례식장이었는데 그 성도님의 장례식장에 들어갔을 때 방문하신 모든 성도님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즐거워하는 가운데 그 장례를 치뤘습니다. 그 성도님이 이제 주님과 기쁨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도님들의 장례식은 항상 기쁨 가운데 치뤄집니다. 그런데 옆방에서 큰 통곡 소리가 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어머니의 통곡 소리 였습니다. 너무나 큰 통곡이여서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나가보니, 장례식장에 들어가 보면 영정사진이 있지 않습니까? 웬 어린 남자학생의 사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그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전에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아침에 아이가 나오지 않아서 그 방에 들어갔는데 그 아들이 죽어있는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예상할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갑작스런 죽음을 앞에두고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슬퍼했겠습니까? 죽음은 예측할수 없는 것입니다. 나이 든 자라고 해서 먼저 죽는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죽음앞에 설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나무들에 둘러싸여서 하나님을 숨어서 피해 있습니다.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 안에 내안에서 반복되는 일은 아닌지요? 여러분은 어떤 나무 뒤에 숨어 있으십니까? 아담은 범죄하였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며 울부짖으며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것은 어리석게도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가만히 둔다면 그는 평생 나무 사이에 숨다가 멸망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첫번째 죄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3:9, 개역한글)
범죄한 이후 에덴동산에서 들려진 첫번째 음성은 죄인의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첫번째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은 <네가 어디 있느냐> 이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어떤 사람도 먼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먼저 죄인을 찾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 죄인을 찾으실 때에 어떻게 다가오시는지를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에 걸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인에게 회오리 바람을 타고 화염검을 들고 아담 앞에 불같이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에서 걸어오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인을 심판하는것이 본 목적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대동하고 화염검을 들고 아담 앞에 나타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걸어오셨습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날이 서늘할때에 오셨습니다. 한낮의 태양이 쨍쨍할때에 하나님의 분노의 불길과 같이 그 태양이 내리쬐고 있을때에 아담앞에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밤이 어두컴컴하여 아무런 소망이 없을때에 아담앞에 걸어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에덴동산의 그 마지막 영광이 다 지고 있을 때에 그 태양이 마지막으로 그 에덴동산을 비춰주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아담을 찾아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나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와같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다 자기만의 나무들 사이에 숨은 사람들입니다. 범죄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나무 사이에 숨어서 그것이 다인지 알고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실때 이와같이 찾아 오십니다. 조용히 찾아오십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제 눈앞에 하나님이 나타나 보십시요. 그럼 믿겠습니다. 눈에 보이도록 뭔가를 해주신다면 제가 믿겠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갔을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을때에 그것은 화 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은 심판 받고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이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마치 에덴동산을 걸어오셨던 것처럼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 오십니다. 이 세미한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신비한 기적이나 놀라운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을 통해서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 아담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찾아 오십니다. 어떻게 찾아오십니까? 지금 여러분 앞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금과 같이 전파되는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고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날이 서늘할 때 찾아오셨던 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전에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주시고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담이 선악과 나무를 따먹은 순간 찾아 오셔서 그에게 벌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판하시고 지옥에 보내는 것이 본 목적이시라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범죄한 그 순간에 나타나셔서 여러분에게 심판을 선언하시고 지옥을 향하여 "지옥아 문을 열어서 이 죄인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할 때에도 하나님은 마치 무관심하신 것처럼 그것에 대해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잘못을 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벌을 바로 집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오늘날 목숨을 더 허락하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왜 여러분이 살아서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명 한명에 대해서 오래 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무 사이에 숨은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제 먼저 찾으시고 부르시고 게신 것입니다. 지금 들려지는 이 복음의 말씀을 여러분 한명 한명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을 이와같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귓가를 계속 맴돌기를 원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속까지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하나님을 찾지 않으셨을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자리를 허락하셔셔 여러분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말씀에 이렇기 기록하셨습니다. <오직 너희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장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언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치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래 참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여러분을 부르고 계 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부르셨을때 아담은 듣고 이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와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내가 어디있는가 생각해 봐야 했습니다. 그는 본래 동산 나무사이에 숨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본래 동산 나무 사이를 지나서 자유롭게 동산을 활보했던 사람 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누리며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사모하면서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나무 사이에 숨은자가 되었던 것입니까? "내가 어찌하여 이와같은 사람이 된 것인가?"라고 하며 그는 자신에게 되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실때 우리도 그와같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풍족한 모든것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담에게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행17:25, 개역한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행17:28,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풍족한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셨을뿐 아니라 만물을 주관하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활보하고 숨을 쉬고 걸어다닐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 입어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미 상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심으로 이미 여러분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이 주신것을 어떻게 사용 했습니까? 아담에게 두 가지 책임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도 두가지 계명이 주어집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첫째가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는 것이고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모든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을 내 몸과같이 사랑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내가 쫓는 쾌락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내 마음에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더 많이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했던 것처럼 우리도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계명을 날마다 어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우리의 쌓은 죄는 날마다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영적인 결핍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지 않는 것이 사람 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람들은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하고 휴대폰을 잃게되면 하루라도 불안해서 견딜수 없는것이 요즘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과 분리 되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나의 모습이 아닙니까?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것이 나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게서 계속 부르시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가족을 통해서 계속 주님 앞에 나오라고 권하고 초청하고 있는데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닙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을 통해서 아담 스스로가 어떻게 떨어진 자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 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귀히 여기지 않고 있었다면 하나님은 아담을 찾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건을 잃어버렸는데도, 그것을 잃어버린 것을 아는데도 찾지 않는것은 그것이 별로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거꾸로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데 "너는 왜 그것을 열심히 찾고 있니? 왜 그것을 찾기까지 쉬지 않고 있니?" "이것은 괭장히 소중한 것이거든." 하나님은 범죄한 영혼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끼지 않는다면 이와같이 부르시고 '네가 어디있느냐' 묻지 않을 것입니다. 아담을 소중히 여기시고 찾으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죄인을 아끼시는 분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 (겔18:20, 개역한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23, 개역한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공의롭게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 땅에서도 재판이 있습니다. 재판이 공의롭게 진행되지 않을때 사람들은 분노 합니다. "어찌하여 재판에서 공의가 실행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공의롭게 재판 진행되는 것을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서 청원을 하고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까? 죄인이라 할찌라도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죄인이 이와같이 바라고 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롭게 행하시는 분입니다. 죄를 반드시 삼판하십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죄인은 반드시 심판 받아야 합니다. 내가 그 열매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던 것처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그 죄를 심문 받아야 하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2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악인이 죽는것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담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는 것을 조금이라도 기뻐하셨다면 아담을 그냥 두셨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아담을 먼저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종교는 동일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종교의 이름은 다양하고 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 공통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이루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모토 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그와같은 종교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사람이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그 죄인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다. 이것이 성경의 말씀 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말씀 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말씀 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할수 없는 것을 아시고 그를 찾기 위해 에덴 동산에 내려 오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와같이 이천년전에 동일하게 행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5, 개역한글)
여러분,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뒤에 이어지는 소식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소식 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분들 각자에게 해당하는 소식입니다. 그 소식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 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여기있는 죄인은 누구인가요? <모든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인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는데, 누구를 위해서 임하신 것입니까? 죄인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찾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 날이 서늘할때에 하나님께서 동산을 걸어서 아담을 찾으면서 오셨던 것처럼 그런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육체를 입고 조용히 베들레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이 오실때에 왕의 모습으로 오신것이 아니라 비천한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어 베들레햄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오셨고 아기로 태어나셨으며 우리와 같이 성장기를 거치고 이제 어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30세가 되실때부터 이제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어 이땅에 오신 이유는 분명 합니다. 그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한번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15:3-7, 개역한글)
여기 주님께서 목자의 비유를 드십니다. 이 목자는 양 백마리가 있었는데 한마리의 양을 잃었습니다. 그 당시의 목자들의 기준에 다르면 많은 양들 중에서 한 양을 잃는것은 아주 흔한일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위험으로부터, 구덩이에 빠지거나, 맹수의 위협으로 인해서 양을 잃었습니다. 양 백마리가 있다면 열마리를 잃는 것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목자는 양 한마리를 잃었는데도 그것을 안타까워 하여서 이 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이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밤새 돌아다니면서 그 깊은 산꼬짜기와 들을 밤새 돌아다니면서 뒤지면서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수고하였던 것입니다. 왜 그러하겠습니까? 그 잃은 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잃은 양은 본인의 잘못으로 길을 잃은것이 분명합니다. 목자를 잘 따라갔다면 길을 잃지 않았을 텐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따라가다보니 길을 잃었고 이제 위험한 수렁가운데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잃은 양은 스스로 목자에게 나올수 없었습니다.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올수 없었고 목자에게 가는길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가만히 놔둔다면 이 잃어버린 양은 맹수의 위협과 깊은 수정에 빠져 죽게되고 말것입니다. 목자는 그것을 알기에 이 어린 한 양을 사랑하여 찾기까지 찾는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아담을 찾으셨던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담을 아끼시고 사랑하셔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찾아오셨던 것처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으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목자이십니다. 지금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이 죄인을 찾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 양이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이제 목자가 발견하였습니다. 목자가 발견하여 이 양을 꺼내려고 하니, 이 깊은 수렁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있는 것입니다.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 이 깊은 수렁에서 양을 꺼내려고 하니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적혀있는 표어를 보는 것입니다. 이 양은 범죄함으로 인해서 마땅히 죽어야만 했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죽으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분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첫번째 죽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첫번째 죽음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영혼은 이제 두가지 장소로 가게됩니다. 이제 다시 부활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영혼은 음부 가운데서 고통을 받다가 부활할 때가 있습니다. 육체와 영혼이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 심판대 앞에 가서 영원히 분리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범죄한 영혼은 그와같은 죽음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 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이 양을, 목자는 어떻게 구할수가 있는것입니까? 목자가 이 잃은 양을 구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깊은 수렁에 빠진 양을 대신해서 목자가 죽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범죄한 것은 양이지만 목자가 그 양을 대신해서 죽어줌으로서 양은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죽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와같이 하신것이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10:11-14, 개역한글)
삯꾼은 깊은 수렁에 빠진 양을 보고 구원하지 않습니다. 힘들여 수고하지도 않습니다. 찾도록 찾지도 않습니다.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이 한마리 잘못한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님은 스스로를 선한 목자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여기 '위하여'는 '대신하여'로도 쓸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천년전에 오셨는데 그 방법은 이와같은 방법 입니다. 마땅히 범죄하여 죽어야 할 우리를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대신해서 주님께서 깊은 수렁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의 수렁 가운데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시편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시69:1-2,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오시기, 천년전에 이 시편에서는 이와같은 일을 이루실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심판을 나타냅니다. 심판 받아야 할 사람은 범죄한 우리 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죄를 범한 사람으로서 영원한 심판 가운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한분이 계시는데 이분은 2절에 보면 <내가 설곳에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간다고 말씀 합니다. 이전에 범죄한 영혼은 깊은 바다 가운데 던져 졌습니다. 요나 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피해갈때 그는 배 위에서 바다로 던져졌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물 가운데로 던져졌던 것이지요. 여기 한분은 스스로 물 가운데 들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곳에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깊은 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이분은 스스로 심판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심판 가운데 있는 우리를 건지시기 위함 입니다.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양을 건지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 심판을 작정하시기로 결심 하셨습니다. 이천년전의 십자가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주님께서 달리셨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죄인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졌습니다. 왜 예수님게서 그와같이 죽으셔야 했나요? 그 이유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로마 병사가 주님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스스로 우리를 대신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일을 위해 이천년전에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양들이 풀려나갈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범죄하는 그영혼은 죽을찌라 라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제 이 양은 자기의 범죄로 인하여 죽지 않아도 죽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양을 대신해서 선한 목자, 그를 찾도록 찾아줬던 그 선한 목자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 양은 범죄했지만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놀라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찾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죄인을 위해서 이미 십자가 위해서 죽어주셨습니다. 죄인의 죄값을 십자가 위에서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이 너를 위해서 너의 죄 값을 다 지불 했으니 너는 더이상 나무 사이에 숨지말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네가 너의 의로 가리고자 했던 그 무화과 나무 잎을 이제 떨쳐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아들로 인해서 만들어놓은 나의 의, 하나님의 영원한 의를 선물로 받으라. 이것은 피값으로 나의 아들이 완성한 것인데, 모든 믿는자에게 값없이 주기 위해서 예비되어 있다. 목마른 자는, 이것을 필요로하는 자는 값없이 와서 받으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나무 사이에 숨지 말고 더 이상 무화과 나무이을 엮지 말고 나올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고개를 들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가 잃어버린 상태임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여기 나의 아들이 이루어 놓은것을 보아라. 내가 너를 위해서 고난받고 죽었다. 이제 어찌 이것을 어찌 거절하느냐?" 하면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죽으신 것은 몇몇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을 때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주님을 믿고 있지 않더라도 이미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어찌 상관 없다고 계속 말씀하실수 있겠습니까? 이 복음의 귀한 소식이 나와는 상관없는 소식이라고 계속 미루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부르시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찾는 대상은 여러분 한분 한분 입니다. 이것을 어찌 계속 미루고 거부하고 계십니까? 이것을 계속 거부하였을 때 우리는 죽음을 맛보게 될 것이고 우리는 죽음을 맞게 될 것이고, 우리가 죽은 후에는 하나님 앞에 불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려 나갔을때, 그때는 더이상 연기할수 없을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음성을 듣고 여러분은 하루를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은 후에는 연기할 날도 없고 피할 나무도 더 이상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 앞에 직접 서야 할 것입니다. 그때는 여럽분을 찾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복음의 소식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유일하게 심판의 선언만이 있을 뿐입니다. <범죄한 죄인들이여 이리로 나아오라> 라는 엄위한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들에게 들려질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한 책이 놓여져 있는데 그것에는 여러분의 모든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서 죽을때가지의 모든 범죄의 기록들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그 책은 지금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기록된 책에 마지막에 이와같은 글귀가 적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와같은 범죄를 하였고 마지막까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았다.' 그것이 행위의 책에 기록된 마지막 범죄입니다. '그는 초청의 소식을 계속 거절하였고 연기하였다. 그는 나의 아들을 거절 하였고 이제 이 앞에 서있다.' 여러분, 어찌하여 그 심판대 앞에 나아가시려 합니까? 우리의 목숨은 거미줄과 같습니다. 그 실타래가 끊어질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더 연기하려 하십니까? 지금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찾고자 하십니다. 나무 사이에 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찾고자 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지금은 구원의 때 입니다. 걸으시면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음성으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찾도록 찾도록, 수고하신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아담을 찾으셨고 그리고 오늘날 많은 영혼들을 이제 찾으셨고 이제 여러분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해가 질때에 찾으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때에 이러한 기회를 주셔서 마지막으로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마음을 여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