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삶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
< 성도의 삶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 > 23년 9월 3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삼상1:5-6, 개역한글)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아내의 이름이 한나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브닌나입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고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해서 한나에게 갑절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는 자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해서 갑절을 주는 것을 브닌나가 가만히 두고보지 않고 한나로 괴롭게 했습니다.
저희들의 삶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것을 이겨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나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한나에게 어려움을 주시고 계십니다. 왜 한나에게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시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접하게 되는 여러 우상들은 세상의 복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저희가 원치않는 어려움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을 당할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꼐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이 시간에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3:1, 개역한글)
한나가 살던 시대는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사는 시대는 성경이 완성되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여느 우상과 달리 지속적으로 저희들에게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날은 저희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볼 뿐만 아니라 여러 은사가 있으신 분들을 통해서 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십니다.
그런데 말씀이 희귀하다, 말씀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말씀이 없다고 하나님을 우리가 탓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사람이 말씀을 읽지 않는 것, 두번째는 말씀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줄수 있는 은사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모임의 분위기가 만일 말씀에 관심이 없다면 모임 안에서 은사있는 형제님들이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임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당대에는 그와같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같은 시대 상황을 주님께서는 한나에게 어려움을 주심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알수있는 것은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고자 하시는 것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보다 잘 살고 건강하게 살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쌔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삼상1:24, 개역한글)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삼상1:28, 개역한글)
이것은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입니다.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1:10-11, 개역한글)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말씀이 희귀했던 시대입니다. 한나가 그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주신다면 그 자녀가 이 시대 가운데 말씀을 전하도록 그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나의 기도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힘드니 아들을 주십시요, 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한나는 시대의 상황을 잘 알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1장에서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젖을 뗀 후에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고 온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에 너무 예쁜 아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하나님께 드리고 오는 것입니다.
한나 자신이 키우지 않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무엘이 자신을 위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대로 그 아들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부분이 한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복된 인생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우리의 삶이 하늘과 연결된 것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내 삶을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이겨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거룩한 기도입니다.
저희들이 하는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의 기도가 한나의 기도와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에 우리는 왜 주님께서 이러한 어려움을 주셨는가를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늘과 연동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찌니라 (렘16:2, 개역한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렘16:9, 개역한글)
우리가 어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대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결혼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경영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아내를 두지 말고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결혼이라는 것은 굉장히 기쁜것이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끊어지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헌신적으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안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드러내고자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심이 우리 가정과 연결되어 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복된 삶인 것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대하24:2, 개역한글)
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일백삼십세라 (대하24:15, 개역한글)
저희들은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다가 주님앞에 가는것이 저희들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희들의 뜻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는 130세를 살았습니다. 굉장히 장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장수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야다가 산 기간동안에는 요아스가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에 요아스가 돌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아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옆에 여호야다를 최대한 붙여두신 것입니다.
저희들의 건강, 가족의 화목함, 불행함, 어떤 한 인생의 장수, 일찍 데려가심은 모두 하나님의 저희들을 향한 뜻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관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연결된 삶을 사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저희들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저희들의 삶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데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