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야고보서 5장 : 욥의 고난과 인내, 병든 자의 기도

박이레 2023. 7. 30. 12:40

< 야고보서 5장 : 욥의 고난과 인내, 병든 자의 기도 > 23년 7월 30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약5:7-18, 개역한글)

지난 시간 욥의 고난에 대한 부분까지 교제했습니다. 텀이 있기 떄문에 잘 기억이 안나실수 있습니다.

5장에 들어서서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고난을 당하는지 1-6절까지 볼수 있습니다. 굉장히 부당한 고난을 당하고 마땅히 받을 삯을 받지 못하고 법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죽기까지 합니다. 그런 고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주님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위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주님은 곧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이와같은 부당한 일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10절에서 이미 이와같은 고난을 통과한 선지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본이 있기 때문에 그 본을 보고 참으라고 말합니다. 또한 욥을 말씀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1, 개역한글)

욥이 어떠한 고난을 받았는지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1:12, 개역한글)

이후 13절부터 욥의 재산이 다 없어지고 욥의 자녀들이 다 죽습니다. 그리고 욥의 반응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1:22, 개역한글)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포기할만한 여러가지 상황이 있었음에도 그 고난을 통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욥은 그 고난을 받을 어떤 이유가 없었지만 그 고난을 순히 통과하였을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42:10, 개역한글)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욥42:13, 개역한글)

처음 있던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십니다. 아들과 딸은 두배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대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동수로 아들과 딸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소유를 잃은 것보다 자녀들을 잃은것이 더욱 클 것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1, 개역한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그 결말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주셨을 때 그 고난을 빨리 피하는 것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과 같이 그 고난을 당하며 그 길을 통과했을때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받을 때에 기도하며 그 고난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인내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12절에 와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앞의 말씀과 연관해서 볼 때에 그 고난을 순히 감내하지 못하는 자가 맹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고난을 잠잠히 인내하지 못하는 자가 말합니다. 그리 하지 말하고 말씀합니다.
욥은 고난 가운데 중보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이 욥이 맹세하지 않고 인내한 것이라는 것을 저희들에게 보여줍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당한 측면을 항변할 수 있고 입을 열어 맹세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욥의 인내를 따라갈 수 있는 자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욥의 인내를 보고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복된 결말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약5:13, 개역한글)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할 것이고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할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많이 평이합니다. 저희가 반복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 삶 가운데서 고난이 있고 또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고난을 당할 때에 기도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람의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하는가요, 그러고나서 해결이 안되면 그때서야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바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쁠때에 찬송해야 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과 생생하게 교제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느부갓네살을 보고 있는데요. 그가 자기 평안과 안식 가운데서 지붕위를 거닐때에 하나님께 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 것인데 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쁨 가운데 있고, 일이 잘 풀린다 할지라도 이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약5:14, 개역한글)

주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사람의 방법으로 피해버리는 사람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있을때 어떻게 하는가를 첫번째로 말합니다.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합니다. 이 병든 것은 거동이 힘든 정도의 병에 걸린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도 병들어 있습니다. 그때에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고 장로들이 기도합니다. 이 병든 자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매우 병들어서 무시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도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들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14절)

이것을 상징적으로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직접적인 의미로 이해할 것인지 생각할 때 이 기름을 바르는 것은 의료행위를 하는 것으로 분별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약5:15, 개역한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이 부분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방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병든 자가 장로들을 청하고 장로들의 기도로 낫게 되었을때 그것이 의사가 낫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낫게 해 주셨음을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주관적인 확신 가운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기로 작정하셨다면 그는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죄에 대한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를 촉발할만한 원인이 되는 행동들을 한다면 말씀에 따른 분명한 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관적인 확신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해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분명히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았을때 고난을 피하지 않고 욥과 같이 통과해야 합니다.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병들었을때 장로들을 초정해서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 기도는 반드시 병이 나을 것이라는 주관적인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구하는 기도가 믿음의 기도라고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