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창세기 성경읽기(요약)

성경읽기 : 창세기 19장 1-11절

박이레 2025. 6. 18. 21:04

성경읽기 : 창세기 19장 1-11절(요약)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창19:1-11,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19장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이 나옵니다. 19장은 18장과 많은 면에서 대조를 보입니다. 특히 롯과 아브라함과의 극명한 대조를 잘 보여줍니다.
19장을 교제할 것인데요, 19장의 개요를 교제해 주셔도 좋고요. 지난 시간 김대현 형제님께서 질문해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지난 18장에 대해서 조금 생각했던 것을 교제하고 19장을 교제하겠습니다.
특별히 50명에서 10명까지 아브라함이 구합니다. 왜 그보다 적게 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될 때에, 10명이 그 가정의 최소 단위 같습니다. 롯의 딸들과 사위들과 하속들을 더했을 때에 그 가정의 최소 단위였을 것입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잘 서 있었다면 소돔이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만약을 가정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지역모임 안에서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잘 서있다면 넘어지지 않을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또한 소돔의 죄악을 유야무야하게 넘길수 없으십니다. 그 공의로우심으로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중보 기도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 제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는데요. 그들이 포로됨에서 자유를 얻었지만, 하나님 없는 자유는 오히려 더 패역하고 부패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9장은 소돔성에 앉아있는 롯에 대해서 시작합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지고 소돔으로 점차 갑니다. 그는 소돔 사람들이 악했던 것을 이미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돔을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구원받은 사람이 맞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소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증거하려 노력했다는 어떤 암시도 성경에 없습니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벧후2:7-8, 개역한글)

그러나 베드로는 롯을 의로운 자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에서 롯의 부족함을 보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롯은 지금 교회 시대에서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비쳐질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육신적인 이유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롯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기도집회 때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모임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A. 지난 시간 김대현 형제님의 질문을 생각할때에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기에, 죄악된 성을 심판치 않으시겠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대조부분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앉아 있었고 롯은 성문에 앉았습니다. 그 장소가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오정에 하나님을 만났고, 롯은 날이 저물때에 두 천사를 만났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있고 어둠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주변 환경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주님과 함께 교제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과 교제할수 없이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족들과 주님께 좋은 것으로 접대하기 바빴지만, 롯의 가족들은 관심이 없었고 무교병만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시는 말씀을 주셨고요, 롯은 도시의 멸망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축복의 말씀이었지만 롯은 모든것을 잃는 경고의 말씀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중에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지만 롯은 그의 두 딸을 소돔 사람들에게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의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했다면, 롯은 겨우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소알에 머물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18장과 19장에서 대조적으로 보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A. 지난 시간 김대현 형제님의 질문을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심판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나서에서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을때 하나님은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죄인이 회개하고 심판을 받지 않을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받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19장 1절을 보면 롯은 소돔 성문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소돔성의 사람들과 동화되어 살아갑니다. 그는 소돔성의 높은 지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롯의 도덕적인 가치관도 소돔의 영향을 받아서 외곡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날이 저물 때"(1절) 시간 흐름상으로 보면 어두울때를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소돔의 타락의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왔을때에 롯은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자고 갈 것을 권유합니다. 그런데 그 2절의 동사가 명령형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오소서", "가소서", 이런것은 강제적으로 말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돔성의 위험을 알기에 계속해서 권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손님들은 이를 거절했지만 강한 롯의 권유로 인해서 롯의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롯의 모습을 볼 때에 베드로후서에 나온 의로운 롯의 심령을 생각하게 됩니다. 롯은 소돔성의 악함을 알았기에 천사들이 길가에서 경야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롯이 소돔에서 했던 행동들을 보면 그와 그의 가정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롯의 집에 손님이 들어온 사실이 소돔성에 아주 빠르게 퍼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놉기 전에"(4절)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그 소돔성의 악함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론 노소하고" 소돔성의 많은 사람들이 그 집 주변으로 모였습니다. 소돔 전체가 도덕적으로나 성적으로 매우 타락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18장에서 소돔이 왜 멸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정당함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임의적이지 않고 공의롭게 행하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Q.  2절에 보면 롯이 두 천사를 초청합니다. 그런데 두 천사가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접대에는 "네 말대로 그리하라"라고 하는데, 롯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두사람의 차이에 대해서 교제해 주실 형제님 있으시면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앞서 의석 형제님께서 개요와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에 대해서 교제해 주셨습니다.
롯이 성문에 앉았다고 교제해 주셨는데요. 이 성문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죄악된 도성에서 성문은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장막은 죄악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롯의 접대를 꺼려하며 길에서 경야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접대는 좋은재료와 많은 양을 접대합니다. 반대로 롯의 접대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교병을 접대합니다.

또 8절의 롯의 말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롯의 생각이 나와 있습니다. 자기 딸들을 사람들에게 내준다는 상식밖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9절에서 롯의 말에 대해서 사람들이 롯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가운데서 천사가 롯을 구원합니다. 그리고 14절에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A. 아까 질문해주신 것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18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접대를 즐겨 받으셨습니다. 19장에서는 롯의 접대를 거부하십니다. 19장에서 소돔에 온 이유는 접대를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소돔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천사들은 소돔의 상태를 둘러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그 가운데서의 롯의 믿음이 어떠한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고도 생각합니다.

5절에 "상관하리라"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어적으로 성관계를 맺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단어로 아담이 그 아내 하와야 '동침'하였다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소돔성 사람들은 동성애와 간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유 1:7)
6절에 롯은 홀로 문 밖에 나가서 군중들을 대하고, 문을 닫아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합니다. 롯은 자기의 생명이 위협될수 있는 상태에서 형제들이라고 말합니다. 롯은 소돔 사람들을 형제들로 대하며 그들이 회개하기를 권면합니다. "악을 행치말라." 이 악은 단순히 실수나 도덕적으로 부족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을 말합니다. 롯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지만 그 도덕적인 기준이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17:28, 개역한글)

롯을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언급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없이 세상적인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결국이 어떠함을 말씀해 주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19장을 보면서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창 13:10) 롯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고자 하시는 성을 여호와의 동산같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서 계속 거합니다. 그러나 롯은 그 장막을 옮겨서 소돔까지 갑니다.(창 10:12) 그리고 결국 롯은 소돔성문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영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장막에 거하지만 롯은 장막도 잃어버립니다. 이 세상이 다이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삶을 살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자의 결국이 어떠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A. 또 의석 형제님께서 질문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재홍 형제님의 답변과 저도 비슷합니다. 천사들은 처음에는 롯의 권유를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롯의 간청에 롯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천사들은 소돔성의 죄악상을 더 확인하려 했던 측면이 있었고요. 반대로 롯은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들을 소돔성 사람들이 어떻게 행할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천사들을 자기집으로 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접대할 때에 하인과 사라가 모두 동원됩니다. 그러나 롯은 홀로 접대합니다.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방문을 즐거워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롯이 소돔성으로 계속 이동해 간데는 롯의 아내의 역할이 간접적으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성애'라는 단어가 '소돔'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소돔성에서는 사람을 위협하는 불량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사람의 재산에 대한 존중이나 권세자들의 존중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자기 딸들을 사람들에게 넘겨주겠다고 하는 롯의 도덕적인 수준도 생각하게 됩니다.